사회 피플

"지옥같은 광부들 삶, 세상에 알리고 싶었죠"

■구사일생 경험한 '광부 시인' 성희직 정선진폐상담소장

막장선 매일 석탄가루 마시며 일해

갱도에 가스 차 질식사 할 뻔도

각종 사고서 살아남은 '생명력'

극한 상황 사람들에 희망 줄수도

진폐증 앓는 광부들에 관심도 촉구

성희직 정선진폐상담소장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세 번째 시집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 북토크를 가진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성희직 정선진폐상담소장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세 번째 시집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 북토크를 가진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봉화 아연 광산 붕괴 사고 현장에서 매몰 광부 박 모 씨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인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책을 손에 쥐어줬다. 그는 기적적으로 생환한 광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신의 시집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를 건네며 말했다. “혼자 무너진 광산에서 16일간 버틴 사람도 있어요. 남편은 동료와 함께 있지 않습니까. 암석 지반이라 추가 붕괴도 없을 겁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니 희망을 잃지 마세요.” 기적은 일어났다. 사고 발생 221시간 만에 박 씨는 부인 옆으로 돌아왔다.



시집을 준 사람은 성희직(65·사진) 정선진폐상담소장. 삼척 탄좌에서 5년간 일했던 성 소장은 ‘광부의 하늘’ ‘그대 가슴에 장미꽃 한 송이를’을 포함해 이미 3권의 시집을 발표한 ‘광부 시인’이다. 진폐상담소는 올해로 14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가 탄광과 인연을 맺은 것은 포클레인 사업이 실패하면서 먹고살기가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돈을 다른 곳보다 2배 이상 준다는 말에 선택한 곳이 강원도 삼척 탄좌였다. 위험하다는 얘기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탄광 작업이 곡괭이질을 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죽을 고비도 두 번이나 넘겼다. 한 번은 폭약을 이용해 천장과 벽면에 있는 석탄을 캐는 ‘케이빙’ 작업을 위해 들어갔다가 막장이 붕괴되기 일보 직전 뛰쳐나와 위기를 넘겼고 또 한 번은 갱도에 가스가 차 질식사하기 일보 직전에 빠져나온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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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경제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난 그는 “광부들에게 봉화 광산 붕괴와 같은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고 회고했다.

‘광부 시인’ 성희직 정선진폐상담소장이 북토크장을 찾은 시집 구매자에게 사인을 하고 있다.‘광부 시인’ 성희직 정선진폐상담소장이 북토크장을 찾은 시집 구매자에게 사인을 하고 있다.


성 소장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부터다. 광부의 일터는 ‘지옥도’를 연상하게 할 만큼 열악하고 끔찍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막장에 한 번 먼지가 일면 빠질 곳이 없어 안개처럼 뿌연 상태가 되기 때문에 방진 마스크를 해야 하지만 숨이 턱턱 막히기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의 시 속에 ‘하루살이떼처럼 춤추는 탄먼지’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결국 마스크를 벗고 석탄가루를 들이마시며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석탄을 캐기 위해 발파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10분은 기다려야 한다. 돈이 곧 생명인 광부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2~3분만 있다가 작업에 돌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탄광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환경을 알 리 없다. 그는 “일을 하면서 지옥의 모습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며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처절하게 일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각종 사고와 절망 속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시로 쓰면 고통과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희망을 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그가 시인이 된 이유 중 하나다. 극한 상황도 이겨내는 끈질긴 생명력은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많은 젊은이들을 구할 수 있겠다는 판단도 한몫했다고 한다. 성 소장은 “많은 사람들이 탄광에 대해 절망적으로 얘기를 하고는 한다”며 “하지만 막장에서 저승사자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광부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 소장은 마지막으로 국민들이 광부, 특히 진폐증에 시달리는 3만여 광산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호소했다. 1960~1980년대 국가 경제의 버팀목이던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진폐증은 산업화 시대의 아픈 유산”이라며 “시집은 당시 광부들의 희생과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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