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우두커니





- 이상국




대관령 아래 왕산면 안반데기 가면 황소하숙이 있다

경운기도 꼼짝 못하는 하늘배추밭이 그들의 직장인데

봄가을이야 하늘이 지붕이지만

찬바람 불고 땅이 얼면

주인은 집으로 가고

황소들은 하숙으로 간다

하숙비는 월 십만 원 정도인데



봄풀이 푸를 때까지 선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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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폭설이 길을 메우고

영(嶺)을 넘어오는 바람이 겨우내

사정없이 지붕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안반데기 황소들은 거기서 우두커니 겨울을 난다

석유 먹는 무쇠 소들이 논밭 직장 다 차지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비탈 밭 가는 황소들이 있군요. 고랭지 배추에 하얗게 낀 서리가 황소들의 입김이었군요. 외양간 없는 아파트 농부들이 하숙집에 맡기고 가는군요. 소들은 여럿이 모여도 우두커니 있나 봅니다. 긴 혀로 좌우 콧구멍 설왕설래 하면서도 제 무용담을 뽐내지 않는군요. 뒷담화 하고 수다를 떨다가 전설을 짓고 신화를 만들지 않는군요. 마른풀 되새기면서 커다란 쇠귀로 바람 경전을 듣는군요. 겨우내 우두커니 지낸 힘으로 새봄을 맞는군요. 속도의 제국에서 보기 힘든 우두커니가 안반데기 황소하숙에 있군요.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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