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커브(Aging Curve)’라는 말이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처음 나온 개념인데, 나이에 따른 운동선수의 능력치를 나타낸 그래프다. 개인별 차이는 있지만 모든 운동선수는 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 능력이 저하되며 이는 기량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축구는 26세를 최전성기로 보며, 25~30세까지는 비슷한 능력치를 보여준다고 한다. 실제로 EPL(영국 프리미어 축구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포지션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26~28세에 기량이 절정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구도 27~28세를 최전성기로 보며 운동 능력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바둑도 20대 초중반이 전성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의 경우에는 언제를 전성기로 봐야 할까? 요즘 아이돌처럼 10대에 전성기를 누리는 친구도 있고, 20대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모델도 있고, 의사, 변호사처럼 40대에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평균 기대수명의 증가라는 변수가 생겼다. 인생을 1막으로만 꾸려도 충분했던 시대에서는 내 직업의 전성기와 내 삶의 전성기 사이의 상관 계수가 높았다. 하지만, 인생 2막, 3막을 사는 시대에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인생의 제2전성기, 제3전성기가 올 수도 있고, 에이징 커브 역시 내가 인생 후반전에서 선택할 일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포물선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인생 2막의 초점을 봉사활동에 맞춘다고 하면 아예 에이징 커브가 적용되지 않는 삶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100세 인생 시대에서는 인생의 전성기가 재해석,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자면, 100세 인생 시대의 봄은 배우면서 성장하는 20대까지, 여름은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30~40대, 가을은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대한 보상과 결실을 맺고 어는 정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50~70대,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80대 이후는 겨울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완숙기, 경제적인 여유 등을 고려할 때 대개의 경우엔 50대부터 건강이 유지되는 시기까지가 전성기에 해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이 슬럼프다. 슬럼프는 주변 환경 등 타의에 의해서, 의도했던 아니든 내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서, 때로는 분명한 원인도 없이 불쑥 내 삶에 찾아온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으며, 예고 없이 왔다가 언젠가는 지나간다. 다만, 바로 그 ‘언제’를 몰라서 우리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것이다.
딱히 매뉴얼이라 부를 만큼 정형화된 것도 없고, 정형화할 수도 없지만, 찾아온 슬럼프를 내가 슬럼프라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탈출의 시작이다. 그게 되지 않으면 탈출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슬럼프 상황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한 번쯤, 아니 그 이상, 삶에 있어서 최고의 시기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지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지나가 버렸을 수도 있고, 아직 오지 않은 전성기를 향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모든 일에는 시작보다 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인생의 전반전에 큰 성공을 이루고 잘 살았더라도 인생의 후반전을 망친다면 그것은 불행한 삶이다. 반대로 인생의 전반전이 별로였더라도 후반전을 잘 살면 그것은 행복한 삶이다. 사람은 마지막 경험과 기억을 더 중시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뉴욕 양키즈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말처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소중하게,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자. 오늘은 내 인생에 남은 날의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