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법인세 인하와 관련해 ‘선(先) 통과, 후(後) 2년 유예’ 방안을 중재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야가 예산 부수 법안을 놓고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자 김 의장이 해결사로 직접 나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부자 감세 사례로 지목한 종합부동산세·가업상속공제·금융투자소득세 등은 절충점을 찾은 가운데 법인세 중재안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의장은 최근 여야 원내 지도부에 법인세 인하 중재안을 제시했다. 중재안은 정부안대로 법인세를 현행 25%에서 22%로 낮춰 통과시키되 시행 시기는 2년 유예하는 게 골자다.
국회의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법인세 인하는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다만 부자 감세라며 일관되게 반대해온 민주당에도 명분을 주기 위해 시행 시기를 2년 미루는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당장 시행되지 않더라도 1~2%포인트라도 여야가 합의해 법인세를 낮추면 그 자체로 국내외 기업에 유의미한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제안이 여야의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 의장이 자타 공인 세제 전문가인 데다 민주당 출신인 만큼 야당이 전면적으로 거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 의장의 중재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관계자는 “합리적인 중재안이라 야당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의장과 국민의힘은 "경쟁국인 대만은 법인세율이 20%에 불과하고 지방세는 아예 없는 반면 우리나라는 법인세 최고세율 25%, 지방세를 합치면 27.5%나 된다"면서 민주당을 설득 중이다.
야권에서도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트렌드 등을 고려해 법인세 문제를 유연하게 봐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스위스와 아일랜드가 13% 안팎의 법인세를 적용해 전 세계 기업들을 유치한 결과 신흥 바이오 강국으로 성장한 점, 중국에 진출했던 배터리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이 법인세가 낮은 베트남으로 대거 이주하는 흐름 등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의장의 의견은 충분히 수렴했지만 어떤 결론도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 말을 아꼈다.
법인세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9일 본회의에서 예산 부수 법안을 포함한 정부의 예산안이 정상적으로 통과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예산 부수 법안은 본회의에서 예산안보다 먼저 처리하는 게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다음 연도에 정부가 세금을 얼마나 걷을지가 확정돼야 그 재원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수 있어서다. 예산 부수 법안보다 예산을 먼저 처리한 사례는 국회선진화법 이후에는 2019년이 유일하다.
법인세를 제외한 종부세·가업상속공제·금투세 등에서 여야 간 이견이 많이 좁혀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종부세의 경우 공시가 6억 원인 종부세 기본공제(1세대 1주택은 11억 원)를 인상해 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절충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금투세도 도입을 2년 유예하는 대신 주식 양도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정부안인 100억 원보다 낮춰 10억 원 선에서 부과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현재 코스피에 상장된 특정 회사의 지분율이 1%(코스닥 2%)를 넘거나 종목별 보유 금액이 10억 원 이상이면 대주주로 분류돼 양도세를 내야 한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1가구 1주택 종부세보다 자산가치가 적은 1가구 2주택자들이 오히려 1주택자보다 과도하게 부담하는 억울한 부분이 있어 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가업상속공제는 내년에 재논의하는 방안이 사실상 확정됐다. 가업상속공제 완화 연기는 여야 모두에 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묘수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은 ‘부자 감세’ 기조를 포기했다는 지적을 피하면서 법인세·금투세 논의에 집중할 수 있다. 국민의힘으로서는 내년에 다시 논의할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에 공약 파기라는 비판을 비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