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국 혼란에 빠진 페루가 14일(현지 시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루이스 알베르토 오타롤라 국방부 장관은 이날 “30일 동안 국토 전체에 비상사태를 내리기로 결정했다”며 페루 전역에서 집회·이동의 자유가 즉시 제한되고 경찰에 영장 없이 시민 주거지를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고 밝혔다. 오타롤라 장관은 이번 조처가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탄핵 및 구금 이후 직면한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의 강력하고 권위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페루에서는 이달 7일 카스티요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연일 격화하는 반정부 시위로 지금까지 최소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공항·고속도로 등 사회 기반시설이 마비된 상태다.
디나 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은 2024년 4월로 예정된 조기 대선·총선을 내년 12월로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탄핵 당시 부통령이었던 그는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남은 임기(2026년 7월) 동안 정부를 이끌 예정이었지만 시위대의 반발에 부딪혀 조기 총선 시행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외신들은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무고한 정치적 희생양이 아니라 무능·부패와 쿠데타 시도로 인해 축출됐음에도 탄핵 반대 시위가 거세게 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의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함께 탄핵 이후 구성된 새 정부를 향한 반감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페루 의회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대통령에게 '도덕적 결함' 혐의를 제기해 주기적으로 탄핵을 시도한 결과 2016년부터 현재까지 6년 간 대통령을 6명이나 교체하며 정국 대혼란을 초래해왔다.
영국 가디언지는 “시위가 진정되더라도 소요 사태의 근본 원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잦은 부정부패와 권력 독점으로 인해 페루 의회를 향한 지지가 극도로 낮다고 설명했다. 페루의 독립연구기관인 페루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카스티요에 대한 반대 여론은 61%인 반면 의회 전체에 대한 반대 여론은 86%에 이르렀다. 또한 페루 국민의 87%는 카스티요가 탄핵될 경우 새로 총선을 치르고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통령 직위에서 곧바로 권력을 승계 받은 볼루아르테 정부를 향한 불만이 높은 이유다.
가디언은 이어서 ‘수도 리마와 나머지 농촌 지역 간 극심한 격차’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소외된 농촌 지역에서 빈농 출신인 카스티요를 향한 강력한 지지 여론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리마 교황가톨릭대학교 정치학과의 오마르 코로넬 교수는 지지자들에게 “카스티요를 믿고 싶어하는 갈망이 있다”며 “온갖 부패 혐의로 둘러싸인 카스티요보다, 억울하게 구금된 ‘순교자’ 카스티요를 믿는 쪽이 더 쉽다”고 설명했다. 코로넬 교수는 이어 “이미 약해진 볼루아르테 정부는 신뢰할 수 없는 의회와 구멍난 내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노하고 있는 시위를 진정시킬 방법을 알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정부 역시 언제든 탄핵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