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핫마이크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말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선거인데 여지를 좀 달라. 선거 끝나면 내 입장도 유연해질 것”이라고 말한 게 녹음돼 보도되면서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다. 재임 당시 화려한 언변으로 ‘소통의 달인’으로 불렸던 오바마도 국가 정상들이 종종 빠진다는 ‘핫마이크(hot mic)’를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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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마이크는 정치인들이 켜진 마이크 앞에서 실수로 욕설이나 비방을 하다가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를 말한다. ‘갇힌(stuck) 마이크’ ‘오픈 마이크’ 등도 유사한 상황을 뜻하는 말로 혼용됐으나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핫마이크로 고통을 겪은 국가 정상들이 적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폭스뉴스 기자에게 내뱉은 “멍청한 ×자식”라는 욕설이 켜진 마이크를 타고 나가 진땀을 흘렸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 테스트를 한답시고 “5분 뒤에 (러시아에) 폭격을 시작한다”고 한 말이 보도돼 난리가 났었다. 2011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당시 이스라엘 총리를 겨냥해 “거짓말쟁이”라고 한 말이, 2019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험담한 말이 핫마이크의 덫에 걸렸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13일 하원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대표에게 “이 오만한 멍청이”라고 중얼거린 말이 테이블에 설치된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와 구설에 휩싸였다. 아던 총리는 즉시 “사과드린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라는 문자를 보내 실언을 바로잡았다. 바이든 대통령도 욕설을 들은 기자에게 곧바로 전화로 사과해 사태를 수습했다. 반면 9월 뉴욕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이XX’ 발언 등 욕설 논란은 한 방송사의 ‘왜곡 보도’ 여부 논쟁 등과 겹치면서 여전히 매듭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정치인은 말로 국민과 국가를 대변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이라면 누가 듣든지 안 듣든지 언제나 나라의 품격을 생각하면서 말해야 한다.

문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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