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일본의 안보 정책에서 미국이 ‘창’이라면 일본은 ‘방패’ 역할을 맡아왔다. 일본이 공격을 받으면 ‘창’을 쥔 미군이 보복을 하면 되니 일본은 방패만 쥐고 방어에 집중한다는 것이 기존 골격이었다. 하지만 16일 결정으로 일본은 창과 방패 모두를 갖는 군사 대국으로 거듭나게 됐다. 일본은 반격 능력을 ‘필요 최소한의 자위 조처’로 규정하고 ‘미국과 협력해 행사’하기로 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으로, 북한은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으로 명기했다. 아베 신조 2차 정권기인 2013년에 만들어진 국가안전보장전략이 수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방위력 강화를 공식화하는 동시에 방위비도 대대적으로 늘린다. 내년부터 5년간 방위비 43조 엔을 확보해 2027년에는 방위비 예산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로 끌어올린다. 5년 기준 방위비를 이전 5년(2019~2023년, 27조 4700억 엔)과 비교해 30% 이상 크게 확충하는 것이다. 2027년에는 기존 방위성 예산에 국한돼 있던 방위비 개념을 해상보안청 예산 등을 모두 포함한 종합적 개념으로 확대해 올해(5조 3687억 엔)의 두 배 이상인 11조 엔 규모로 늘린다. 방위비는 당장 내년부터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된다. 2023 회계연도 예산안에 포함된 방위비는 6조 8000억 엔으로 직전 연도 예산에 반영된 5조 4000억 엔 대비 26%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방위비의 대부분을 미사일 실전 배치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향후 5년간 5조 엔을 들여 장사정 미사일을 배치하고 미국의 중거리 순항미사일인 토마호크 구입과 육상 자위대의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사정거리를 늘리기 위한 개량형 개발 및 양산에도 수천 억 엔을 할당한다. 현재 자위대가 확보한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짧기 때문에 원거리 타격 무기를 본격적으로 보유하고 나선 것이다.
‘국가안전보장전략’ 문서에 등장하는 주변국 기술에도 변화가 있었다. 중국에 대해 지금껏 “국제사회의 우려 사항” 정도로 표현했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으로 변경했다. 또 러시아와 관련해 “모든 분야에서 러시아와 협력”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안전 보장상 강한 우려”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종전보다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이라며 위협 표현의 수위를 높인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지정학적이나 우리나라의 안전 보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웃 나라”라는 표현이 유지됐다.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고조됨에 따라 일본 내에서도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정부의 새로운 안보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전후 70년 넘게 유지된 평화헌법의 ‘전수방위(방위를 위한 무력만 행사)’ 원칙을 사실상 포기하고 군사 강국으로 회귀하는 데 대해 일본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반격 능력 행사의 기준도 모호하게 설정돼 일본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반격 능력 행사 요건으로 존립 위협 및 국민 생명·자유에 명확한 위험 발생, 국민을 지키기 위한 다른 수단의 부재 등을 제시했지만 공격을 받았다고 보는 근거 등에 대해서는 개별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방위비 조달을 위한 증세 방침을 두고 논란이 크다. 일본 정부는 법인세·소득세·담뱃세 등 3개 항목의 증세를 통해 2027년 1조 엔 이상을 확보할 방침이다. 법인세는 현행 세율을 유지하는 대신 특례 조치로 법인세액에서 500만 엔을 제외한 금액에서 4~4.5%의 부가세를 부과한다. 중소기업 대다수는 법인세액이 500만 엔 이하인 만큼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악화하는 와중에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증세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서둘러 증세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졸속’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미국은 일본의 안보 정책 전환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6일(현지 시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한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라며 “방위 투자를 의미 있는 폭으로 증액하기로 한 일본의 목표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동맹이 강화하고 현대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