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뒷북경제] “경계 단계 지나” vs “고물가 기조적”…물가 놓고 금통위도 갑론을박

물가 전망에 따라 매파 비둘기파 갈렸다

“고금리로 소비 여력 줄어 수요 압력 둔화”

“저금리 저물가 시대로 돌아가기 힘들어”

추세적 변화 확인해야 한다는 신중론 대세





기준금리가 최종금리에 가까워지면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의 의견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금통위원들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인상하기로 만장일치 결정했으나 최종금리를 놓고는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리를 더 올리면 안 된다는 의견부터 한 번만 더 올리고 끝내자는 의견과 두 번 이상 올려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합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달 금통위서 언급한 ‘최종금리 3.25% 1명, 3.50% 3명, 3.75% 이상 2명’이라는 한국식 점도표에 어느 정도 들어맞습니다.



금통위 내부 의견이 이토록 극명히 갈린 것은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그동안 금통위원 대부분이 물가 안정이 시급하다고 봤기 때문에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는 것에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랬던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 가장 큰 요인은 최근 물가 흐름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


지표를 먼저 살펴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월 6.0%에서 7월 6.3%로 정점을 지나 8월 5.7% 9월 5.6%, 10월 5.7%, 11월 5.0%로 내림세가 관찰되고 있습니다. 이에 한은 담당 부서는 “물가가 7월을 정점으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한은이 중요하게 살펴보는 물가 지표 중 하나인 기대인플레이션은 6월 3.9%, 7월 4.7%, 8월 4.3%, 9월 4.2%, 10월 4.3%, 11월 4.2% 등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A금통위원은 “물가 상승 압력의 확대를 경계할 단계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금융 부담 증가로 가계 소비 여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집값 하락으로 인한 역자산 효과가 발생하는 데다 고물가로 소비가 제약되는 만큼 수요 압력이 둔화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A금통위원은 “실질 소득과 구매력의 둔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데다 금융 불안의 전개 양상, 그 파급효과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향후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플레이션 자체는 목표 수준을 크게 상회하고 있지만 이보다는 금융 불안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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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그런데 B금통위원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렸습니다. 물가가 7월 정점보다는 소폭 낮아졌으나 하락 속도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B금통위원은 “가공식품 가격 오름세 확대와 전기·도시가스 요금 인상의 영향이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 가운데 근원물가 등 기조적 물가 상승세가 확대되고 있다”며 “누증된 공공요금 인상 압력, 지속성 높은 기조적 물가 흐름 등을 고려할 때 하락 속도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B금통위원은 “최근 물가가 근원물가 중심의 수요 측 요인에 의해 상승하고 있는 점은 정책 대응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라며 “물가 경로에 많은 불확실성이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외환시장 불안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금융 리스크는 구조조정 등을 통한 위험관리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 연합뉴스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C금통위원 역시 고물가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습니다. 국제 유가나 곡물 가격 등 생산 비용이 높아진 영향이 시차를 두고 외식비나 내구재 등 광범위한 근원물가 품목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입니다. 무엇보다 구조적 전환을 언급하면서 앞으로 저물가·저금리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언급까지 내놓았습니다. C금통위원은 “신 냉전신대의 대두,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성, 새로운 경제안보 질서의 모색, 기후 변화, 인구 고령화 등 서서히 진행되는 구조적 전환도 향후 글로벌 경제가 지난 20년의 저물가·저금리 시대로 곧바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고 짚었습니다.

C금통위원은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기조 강화가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 쪽을 선택을 해야 한다면 물가가 우선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당면한 복합적 경제 문제들을 통화정책으로 모두 풀어나갈 수 없으며 물가 안정에 가장 우선 목표를 두고 긴축 기조를 지속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습니다.

A금통위원과 B·C금통위원은 같은 자료를 보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내렸고 이에 따른 추가 금리 인상 의견도 갈린 셈입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금통위원들은 보다 신중한 입장입니다. D금통위원은 “불확실한 요인을 살피며 신중히 긴축 속도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E금통위원은 “(물가의) 추세적 변화를 확인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F금통위원도 “물가 오름세의 기조적 둔화를 확인하기 전까지 물가 안정에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년 중 최종금리가 어떻게 될지는 금통위의 물가 흐름 해석에 달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금통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거나 신중한 모습을 보일 정도로 물가 향방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기도 합니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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