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의 한 병원에 위 용종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40대 남성 A 씨는 수술 바로 다음 날 새벽 3시에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받았다. 도우미의 안내로 휠체어에 앉은 채 이동했는데 검사실 앞에는 적지 않은 환자가 대기 중이었다. A 씨는 “CT 검사를 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렇게 하는 것 같다”며 “아무리 그래도 잠자는 환자를 깨워 검사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병원의 모럴해저드도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 보건복지부가 8일 공청회에서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공개하며 밝힌 사례를 보면 최근 두통·어지럼증을 느껴 신경학적 검사를 받은 B 씨는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의사의 권유로 뇌·뇌혈관 2종류의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했다. C 씨는 복부 불편감, 갑상선 결절 등을 이유로 하루 동안 상복부·방광·여성생식기·유방·갑상선 등 5개 부위를 같이 검사 받았다.
상황이 이런 데는 문재인 정부의 건보 보장성 확대 정책인 ‘문재인케어’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초음파·MRI 검사에 건보 적용을 확대하면서 이용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과잉 의료를 들여다본다고는 하지만 인력 여건 등을 감안할 때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며 “MRI의 경우 두 곳 이상을 동시에 촬영하는 복합 촬영이 일반화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는 건보 재정 누수의 주범으로 꼽혀온 초음파·MRI 검사의 보험 적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건보 지속 가능성 제고 대책에 따르면 복지부는 과잉 초음파·MRI 검사를 줄이기 위해 1회 뇌·뇌혈관 MRI 검사 시 찍을 수 있는 복합 촬영 종류를 세 가지에서 두 가지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초음파의 경우 같은 날 여러 부위 검사 시 최대 건보 적용 횟수를 설정하기로 했다. 특히 수술 위험도 평가를 위한 상복부 초음파 검사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급여를 적용할 계획이다. 아울러 당초 건보를 적용할 예정이었던 근골격계 초음파·MRI 검사는 의료적 필요도와 이용량을 분석해 필수 항목에만 제한적으로 급여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막말로 한 번에 두 가지로 제한하면 두 번에 나눠 촬영하면 그만”이라며 “같은 날 못하게 하면 다른 날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이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얘기가 아니고 규제를 피해 갈 여지가 있다는 얘기”라며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큰 것도 당국 입장에서는 부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