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사진작가 김명중 "사진이 아니라 사람을, 인물이 아니라 인생을 찍습니다"

[이사람] 사진작가 김명중

14년째 폴 매카트니 공연 전속촬영

IMF 위기로 英 유학중 학교 중퇴

지역신문 사진기자로 사진인생 출발

스파이스 걸스 공연촬영 후 입소문

마이클 잭슨 등 세계적 스타들과 작업

방글라데시 선교 동행후 인생관 변화

가난한 이들 얼굴서 행복한 표정 읽어

최소 6년은 '돕는 인생' 살기로 결심

을지로 장인들 담은 사진 전시하기도

사진작가 김명중 사진 제공=한국컴패션사진작가 김명중 사진 제공=한국컴패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마주친 얼굴은 비틀스 출신의 폴 매카트니였다. 80세의 매카트니가 올 6월 세계적 음악 축제인 ‘영국 글래스턴베리’ 무대에 올라 1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3시간 동안 36곡을 열창할 때 이 방의 주인이 그와 함께 있었다. 공연 다음 날 아침, 영국 언론들이 글래스턴베리 역대 최고 관객을 열광케 한 최고령 간판 공연자를 추앙하며 “우리는 매카트니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보도한 사진들을 놓고 흐뭇해하던 이 사람. 1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사진작가 김명중(50·MJ KIM)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폴 경(영국 기사 작위를 받은 매카트니를 김명중은 그렇게 부른다)과의 인연이 14년을 넘겼네요. 공연 전속 사진작가로 함께 일하기 시작한 지 3년쯤 됐을 무렵, 내 안의 재미와 열정이 조금 식었었나봐요. 폴 경이 저를 불렀어요. 제 눈을 바라보며 ‘MJ 너의 사진이 더 이상 나를 전율시키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해’하고 묻더군요.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죠. 그리고 또 하나 배웠습니다. 그 정도의 위치라면 나를 만날 필요도 없이 단칼에 자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옆에 앉혀놓고 얘기를 하다니 존경스러웠어요.”

사진작가 김명중이 14년째 공연 전속작가로 함께 일하고 있는 폴 매카트니 /사진제공=김명중 작가사진작가 김명중이 14년째 공연 전속작가로 함께 일하고 있는 폴 매카트니 /사진제공=김명중 작가


대중 앞에 선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모습을 그가 촬영했다. 작업실 벽에 사진이 붙은 배우 조니 뎁과 존 말코비치를 비롯해 스팅, 비욘세, 내털리 포트먼, 빅토리아 베컴과 함께 일했고 엘리자베스 여왕부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스티브 잡스와 방탄소년단(BTS)까지 세계적인 유명인들도 직접 찍었다. 가장 화려해 보이는 인생이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어중이 떠중이 명중이”라며 겸허하게 부른다. 계획도, 꿈도 없이 시작한 인생이 우연과 인연을 기회로 만들어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기에 “재미와 열정만 잃지 않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려는 뜻에서다.

재력도, 학벌도 없었다. 노느라 대학 입시에 실패했고 아르바이트로 방송국에서 일하다 패션쇼 연출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방송 PD나 영화감독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 뉴욕으로 가 패션과 영화를 공부하리라 마음먹었다. 값싼 유학원을 찾아간 게 화근이었다. 비자를 받으러 미국대사관에 갔지만 그 자리에서 ‘리젝트(reject)’당했다. “너는 남자애가 왜 여자 기숙학교 입학 허가서를 갖고 왔니?”

대책 없는 스물두 살이었다. 가족·친구들과 이미 송별회도 다 했으니 한국에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에서 유학한 친구가 ‘영국은 공항에서 비자를 준다’기에 집에는 말도 않고 비행기표를 바꿔 영국으로 향했다. 1995년 4월, 신통치 않은 영어 실력으로 이국땅을 밟았다. 그해 9월에 개학을 했으나 영어가 원활하지 않아 영화 그룹 수업과 팀 작업에서 자꾸만 소외됐다.

“고민하다가 부전공인 사진으로 눈을 돌렸어요. 평생 카메라를 잡아본 적이 없지만 사진은 영어가 필요 없으니까.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깜깜한 암실에서 하얀 인화지 위로 사진의 상이 올라오는 순간 전율을 느꼈어요. 미술에 소질 없던 내가 꼭 예술가가 된 것 같았거든요.”

사진작가 김명중 /사진제공=한국컴패션사진작가 김명중 /사진제공=한국컴패션


살면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재미를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사진 공부를 시작했지만 이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1파운드가 1300원일 때 유학길에 올랐는데 3500원까지 치솟았다. 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 신문에 조그맣게 실린 지역 신문사의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가 사진기자 견습사원이 됐다. 사진 인생의 출발이다. 비빌 언덕도 없는 그에게는 열정이 전부였고, 삶이 스승이었다.

“나는 영어도 잘 안되고 사진도 잘 아는 게 아니니 제일 일찍 가서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최선이었어요. 영국 프레스어소시에이션(PA)의 정직원으로 채용됐죠. 다른 기자들이 뉴스메이커로서의 자부심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사진 촬영을 못마땅해 할 때 저는 뭐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어요.”



2000년대를 전후로 대중문화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그는 일약 영국 메인 통신사의 가장 중요한 연예부 사진기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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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게티이미지로 이직하면서부터 활동 영역이 영국에서 글로벌로 확장됐습니다. 칸과 베니스를 누비고 즐거웠지만 오스카 영화제도 한두 번이지, 반복되니 재미가 없는 거예요. 2007년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신뢰를 쌓은 인맥의 소개로 회사를 떠나 처음 한 일이 ‘스파이스 걸스’의 투어 공연 촬영이었어요. 일을 잘 마치고 나니 ‘MJ가 센 언니 다섯 명을 모두 만족시켰다’는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그다음에 잭슨을 소개받았고 폴 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김명중이 엔터테인먼트 전문 사진작가로 명성을 쌓게 한 여성 그룹 ‘스파이스 걸스’. 사진 제공=김명중 작가김명중이 엔터테인먼트 전문 사진작가로 명성을 쌓게 한 여성 그룹 ‘스파이스 걸스’. 사진 제공=김명중 작가


김명중 작가가 한국컴패션과 함께 방문해 촬영한 케냐의 어린이들. 사진 제공=한국컴패션김명중 작가가 한국컴패션과 함께 방문해 촬영한 케냐의 어린이들. 사진 제공=한국컴패션


화려함과 달콤함이 인생의 만족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월드클래스’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떠난 방글라데시 단기 선교에 동행했다.

“솔직히 말할게요. 처음 목적은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흑백사진으로 길거리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좀 찍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흔한 보도사진들처럼. 방글라데시 공항에 도착하니 길거리에 노숙자가 잔뜩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행복한 거예요. 고통에 찌든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돈이 없으면 이 사람들이 불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평생 물질적인 풍족만을 원하던 나 자신과 방글라데시의 미소가 겹쳐지면서 제 인생이 TV 채널 바뀌듯 달라졌어요.”

그날 이후 그의 마음에는 ‘거룩한 부담감’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돕는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고 60년 인생의 십일조로 최소 6년은 봉사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바쁜 와중에도 국제 어린이 양육 기구 컴패션과 함께 여러 나라를 다니는 이유다. 마사이족 사진은 전통 복장을 입고 캥거루처럼 뛰는 모습 일색이지만 그는 공부 잘하는 아들을 둔 부모의 자랑스러운 표정을 사진에 담았다. 페루 빈민촌에 갔을 때는 하굣길 딸아이를 목말 태우고 웃으며 걷는 아버지를 찍었다. “흙집에 사는 마사이족이든 선진국 도시인이든 부모의 자식 사랑은 똑같아요. 세상에서 내 딸이 가장 예쁘고 소중한 아빠의 마음도 마찬가지고요.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보다 본질이 중요해요.”

사진작가 김명중 /사진제공=김명중 작가사진작가 김명중 /사진제공=김명중 작가


사진작가 김명중 사진 제공=김명중 작가사진작가 김명중 사진 제공=김명중 작가


2017년 이후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렸다. 희망을 전하는 자전 에세이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를 출간했다. 책으로 인연을 맺은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로부터 을지로 장인들을 찍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을지로 부흥을 위한 묘수에 공감했고 6개월간 을지로 공업소에서 숙식하다시피 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열었고,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달라며 미소를 찾아냈다. 사진들을 모아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도 열었다.

“을지로 사장님의 식구들이나 오시겠지 했던 전시가 20대 관람객으로 가득했어요. 소시민의 얼굴 앞에서 젊은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디지털 시대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모두가 ‘나 잘 살고 있다’는 얘기로 가득한데 오히려 사람들은 그런 자랑에 피곤했던 겁니다. 꾸밈없는 을지로 장인들을 보며 내 아버지를 떠올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감동했던 거예요.”

작업실 한쪽에는 그의 늦깎이 대학원 졸업 작품도 보인다. 신비로운 사진의 아래쪽에는 평범한 옷차림의 여성이 있고 그 위쪽으로 스텔라 매카트니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부활한 여성이 붕 떠올라 있다. 김명중의 사진은 그렇게 영혼에 고운 옷을 입힌다. 사진이 아니라 사람을 찍는다. 인물이 아니라 인생을 찍는다.

김명중의 성수동 작업실 한쪽 벽에는 폴 매카트니, 콜드플레이의 노래하는 모습과 로버트 패틴슨, 존 말코비치 같은 유명배우 사진 사이에 을지로 공업사의 사장님들, 패션을 통한 영혼의 부활을 주제로 한 대학원 졸업작품 등이 붙어 있다.김명중의 성수동 작업실 한쪽 벽에는 폴 매카트니, 콜드플레이의 노래하는 모습과 로버트 패틴슨, 존 말코비치 같은 유명배우 사진 사이에 을지로 공업사의 사장님들, 패션을 통한 영혼의 부활을 주제로 한 대학원 졸업작품 등이 붙어 있다.


He is…

△1972년 서울 △대일외고 졸업 △런던패션대 대학원 패션사진 석사 △2000~2001년 영국 텔레그래프 사진기자 △2001~2004년 영국 프레스 어소시에이션 연예 담당 사진기자 △2004~2007년 영국 게티이미지 연예 담당 사진기자 △2020년 단편영화 ‘쥬시걸’ 감독 △2008년~ 영국 가수 폴 매카트니 공연 전속 사진작가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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