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헬싱키그룹






1975년 8월 1일 옛 소련을 포함한 유럽 33개국과 미국·캐나다 등 총 35개국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주권 존중, 전쟁 방지, 인권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헬싱키협정에 조인했다. 이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 후 30년 동안 지속된 유럽 지역의 냉전이 봉합되고 동서 진영의 해빙 무드가 시작됐다. 무엇보다도 이 협약은 소련 인권 운동 활성화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소련의 반체제 인사, 과학자 등이 이를 발판으로 이듬해 5월 소련의 인권 조항 준수를 감시하는 ‘헬싱키협정 이행 지원을 위한 모스크바그룹(헬싱키그룹)’을 창설한 것이다. 이 그룹은 해마다 열악한 인권 상황 보고서를 만들어 관련 34개국의 주소련 모스크바 대사관에 보냈고 외국 특파원들을 만나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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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등 서방 언론들은 헬싱키그룹 소식을 소련 전역에 보급하는 것을 도왔다. 소련의 정보기관 등은 투옥, 추방, 강제 이민, 유배, 정신병원 수감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헬싱키그룹 회원들을 탄압했다. 1982년에는 이 그룹을 강제로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헬싱키그룹은 오히려 동서 유럽 등에서 설립·확산됐고 이는 국제헬싱키연맹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1978년에 ‘휴먼라이츠워치’의 모태가 된 ‘헬싱키워치’가 만들어졌다. 이 그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통치 시기에 부활했다. 결국 19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과 1991년 공산주의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다. 헬싱키그룹이 철의 장막 속에서 민주화의 불씨를 피웠던 역할을 한 셈이다.

러시아 법무부가 헬싱키그룹의 해산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20일 전해졌다. 모스크바 지역 단체라는 법적 지위를 어기고 러시아 내 다른 지역에서 행사를 진행했다는 혐의다. 이해하기 어려운 혐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로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비판적인 야권 인사나 재야 단체에 대한 체포·해산 등의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는 이런 권위주의 체제와 자유 민주 체제 사이에 블록화·신냉전이 가속화하고 있다. 인권·자유·민주·법치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해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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