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터에서 잠깐 소개했던 '대마씨 비건밀크' 기억하시나요? 대마(햄프)의 씨앗으로 만든, 수상쩍지만 궁금한 퓨롯의 햄프밀크인데요. N번째 용사 에디터가 11월 푸드위크에서 맛을 보고 오더니 자신 있게 추천!을 외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엔 생강 에디터가 퓨롯 브랜드를 운영하는 파인푸드랩의 김수정 대표님을 찾아갔어요.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4에 출연하셨고 한국식음료세계협회 회장이시며 식음료 컨설팅 사업 등등 정말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 분.
제가 유당불내증이라...
퓨롯의 햄프밀크 카카오는 묵직한 목넘김과 자극적이지 않은 단 맛이 인상적이었어요. 아몬드나 귀리 우유는 맹맹해서 좋아하지 않았던 생강 에디터가 김 대표님을 찾아간 결정적인 이유.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제일 궁금하더라고요.
우선 대마씨로 '비건 밀크'를 만들기로 한 이유를 여쭤봤어요. "제가 유당불내증이고 한국인의 70%가 마찬가지라서"라고 하시더라고요.
속 편한 우유를 만들어보려고 가장 영양가 높은 재료를 찾아봤더니 대마씨란 결론이 나왔던 거죠. 단백질 함량은 우유와 비슷한데 우유에 없는 식이섬유 등등이 풍부하고요. 적은 양의 물로 1년에 6모작이 가능해서 지구에 덜 폐를 끼치는 식물이기도 하대요. 물론 환각 물질(대마씨의 껍질에 함유)을 제거해서, 식약처 허락도 받았어요.
◆퓨롯 햄프밀크 성분 따져보기
△있음 : 식물성 단백질(대마씨는 아몬드·귀리의 약 2배), 오메가 3·6·9(연어와 고등어 10배 이상), 불포화지방산, 아르기닌, 식이섬유(사과나 양배추의 1.5배 이상), 폴리페놀, 미네랄, 비타민, 칸나비디올(CBD, 스트레스 완화 효과 관련기사 보기)
△없음 : 설탕, 유화제, 방부제, 색소, 콜레스테롤, 트랜스지방, 글루텐, 락토스(=락토프리)
다만 좀 아쉬운 점은...퓨롯 제품에 들어가는 대마씨는 캐나다산이에요. 대표님도 "너무나 국내산을 쓰고 싶은데 국내 생산량이 워낙 적어서 캐나다산의 5~10배 가격"이라고 설명하시면서 "언젠가 국내산을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미국, 유럽에서는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CBD 음료나 건강기능식품이 이미 인기. 힙한 카페에서 음료에 CBD 한두 방울씩 떨궈 내어주기도 한다고.
맛없는 대마씨, 이렇게 맛 냈어요
대마씨 자체는 맛이 없었대요. 먹어보면 잣의 고소함으로 시작해서 강력한 풀향(진짜 풀의 10배 정도)으로 끝난다고. 500번을 갈아보고, 뺄 수 있는 첨가물은 다 빼고도 맛을 내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했다"고. 1년 동안 갖은 시도 끝에 카카오 맛과 몇 가지 비법(영업비밀, 특허 출원중)으로 풀맛을 잡았죠.
레시피는 완성이 됐는데, 상하지 않게 유통할 수 있도록 끓였더니 카카오 성분이랑 나머지 성분이 층으로 분리되더라는 거예요. 막걸리도 아닌 것이...! 이 문제는 '젤란검'이란 첨가제로 해결할 수 있었어요. 해조류에서 추출한 천연 첨가제인데도 처음에는 싫었지만 막상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뛰어들어 보니까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셨다고. 더 저렴한 첨가제(아라비아검 등등)보다 세 배(킬로당 무려 15만원!)가 비싸지만 건강한 음료를 만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택하셨대요. 젤란검은 퓨롯 햄프밀크의 걸쭉함을 만들어주는 성분이기도 해요.
듣다 보니 퓨롯 햄프밀크의 탄생 과정이 전부 이런 식이었어요. 대마씨를 갈아서 페이스트로 만드는 과정에서 까슬까슬한 질감을 없애려고 소량의 해바라기씨유를 쓰는데, 올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구할 수가 없어진 거예요. 일반 소비자들은 그나마 비싸게라도 살 수 있었지만 기업용 제품은 뚝 끊긴 거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옥수수배아유를 쓰셨는데, 옥수수배아유는 그때그때 환율에 따라 미국산 또는 러시아산 또는 브라질산 중에 랜덤이에요. 그래서 제품 성분표에도 3개국 전부 적혀있고요.
대표님은 "그렇게 성분표에 찍히는 게 너무 싫고, 유전자변형식품(GMO)일 가능성도 있고, 저와 비슷한 소비자들에게 불안감을 주기가 너무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더라고요. 살아 생전 식품 성분표를 1초 이상 읽은 적 없는 에디터로선 사실 잘 이해가 안 됐어요. 대표님은 울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분이시구나...힘드시겠다...싶었죠. 대표님 같은 생산자들 덕분에 소비자들이 행복해지는 거겠죠?
쾌변, 원해?
다행히 대표님은 완벽주의의 고통을 금방 떨치는 분인 것 같더라고요. 글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수퍼 울트라 하이 텐션을 인터뷰 내내 유지하시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셨어요. 우선 카카오 다음으로 말차맛, 주주베(서양대추)맛, 진저(생강)맛을 선보이려고 레시피를 만들어 두셨대요. 플레인은 계획이 없으신지 여쭤봤는데 이미 시중에 플레인 비건밀크가 많아서 굳이 경쟁할 생각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마신 흰우유 맛에 익숙하기 때문에 잘해도 본전"이란 말씀.
비건밀크 외의 제품도 개발 중. 치아씨드, 바질씨는 씨앗 부피의 50배에 달하는 수분을 흡수하는 애들이래요. 요 씨앗들을 햄프밀크랑 컵에 부어두고 세수 한 번 하고 오면 푸딩처럼 되는데, 거기에 이런저런 베리류를 얹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고 속이 편하다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그날 엄청난 쾌변..."이라고. 요런 제품을 물에 타 먹는 분말 형태로 만들어서 선보일 계획이시래요. 에디터가 매우 솔깃해 했더니 "퓨롯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 출시할 수 있으니까 많이 응원해달라"고 협박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도둑놈이 따로 없죠?"라며 호탕하게 웃으시는 바람에...그만 반하고 말았습니다.
퓨롯은 와디즈 펀딩 대성공(2902%) 이후 자사몰에서 판매(25일까지 최대 15% 세일중)를 시작했고, 카카오쇼핑·쿠팡과 다수의 B2B 채널에 이어 앞으로도 판로를 넓힐 계획이래요. 완벽주의자답게 좋은 식재료를 확보하려고 직접 농사도 지어 보고 약초도 캐 본 대표님은 앞으로도 "그냥 맛있다 콸콸콸, 이 아니라 어떤 성분이 좋고 어느 제품이 더 좋은지 알고 먹을 수 있는 안목을 소비자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그래서 좋은 재료로 전통 요리를 만들어 온 전국의 종부님(종갓집 맏며느리)들과 손잡고 K푸드,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체험형 프로그램도 고민 중이시라고. 예를 들어서 강원도 강릉 향토음식인 씨종지떡(=비건)을 종부님과 함께 쪄서 먹고 고택 뒷편의 대나무숲길을 걸으며 지역의 역사를 듣고...퓨롯과 김 대표님의 행보가 진심으로 궁금해졌어요.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말. 우유는 소의 젖이잖아요. 소들은 1마리당 매년 5톤 가량의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인공 수정을 당하고, 끊임없이 임신과 출산을 하며 젖을 생산하다가 경제성이 떨어지는 6살 전후에는 도축당해요. 30년은 살 수 있는 녀석들인데도 말예요. 이런 식으로 유제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배출되는 탄소배출량은 2015년 기준 17억톤, 전세계 비행기가 배출하는 양의 2배나 돼요. 우유 대신 비건 밀크, 입맛에 맞는 제품으로 얼른 찾으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