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 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1심 판결에 대해 “제겐 완전한 패소였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지난달 6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고, 위자료로 1억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2017년 최 회장이 이혼 소송을 내고, 2019년 노 관장이 반소를 제기한 이후 각각 5년과 3년여만이다.
최 회장 측은 노 관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런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노 관장은 2일 공개된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심 판결은) 예상 못 한 결과였다. 제가 결혼 생활 34년간 가장 애를 쓴 건 가정을 지키고자 한 것"이라며 "그동안 인내하기 어려운 일도 많았다. 그래도 저는 가정을 지키려고 끝까지 노력했다”고 했다.
노 관장은 “2017년 남편이 먼저 이혼 소송을 냈고, 그래도 견디다가 더 이상은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해서 2019년 반소(反訴)를 제기했다”며 “그렇게 5년 동안 이어온 재판이고 국민도 다 지켜보시는 재판인데, 판결이 이렇게 난 것이 창피하고 수치스럽다”고 말했다.
또 “특히 이 판결로 인해 힘들게 가정을 지켜온 많은 분이 유책 배우자에게 이혼당하면서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대표적 선례가 될 것이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노 관장은 당초 위자료 3억 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가운데 50%를 재산분할로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 관장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노 관장의 항소장 제출 이후, 최 회장 측 역시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노 관장은 재산 분할 665억 원 판결에 대해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많은 분이 보시기에 적지 않은 금액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점 저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개인의 안위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저도 사회를 위해 이바지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문화 예술과 기술교육 분야를 통해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외부에 드러난 바로 5조 원 가까이 되는 남편 재산에서 제가 분할받은 비율이 1.2%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34년의 결혼 생활 동안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남편을 안팎으로 내조하면서 그 사업을 현재의 규모로 일구는데 제가 기여한 것이 1.2%라고 평가받은 순간, 그 금액보다 그동안 저의 삶의 가치가 완전히 외면당한 것 같다”며 “이번 판결로 수십 년을 함께 한 배우자로부터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받으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1심 재판부는 ‘가사노동 등에 의한 간접적 기여만을 이유로 사업용 재산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경영자 내지 소유자와 별개의 인격체로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회사 기타 사업체의 존립과 운영이 부부간의 내밀하고 사적인 분쟁에 좌우되게 하는 위험이 있고 기타 이해관계인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영향을 미치게 될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SK주식회사 주식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영권 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 가정경제공동체와는 뚜렷하게 구분해 관리 운영되었으므로 그가 SK주식의 유지·관리에 관여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보며 SK주식의 가치 상승이나 처분 및 관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SK주식을 최 회장의 특유재산이라고 판단,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 관장은 “1심 판결은 SK주식뿐만 아니라 최 회장의 모든 특유재산, 다시 말해 SK주식뿐만 아니라 미술품과 부동산 등을 전부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왜 이런 판결이 나오게 되었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노 관장은 “1심 판결의 논리에 따르면 대기업 오너들뿐만 아니라 그 규모를 불문하고 사업체를 남편이 운영하는 부부의 경우, 외도한 남편이 수십 년 동안 가정을 지키고 안팎으로 내조해 온 아내를 거의 재산상의 손실 없이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1심 판결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 회장과는 1988년 결혼해서 큰딸, 둘째 딸, 막내아들을 낳아 잘 키웠고 34년간 가정을 지켜왔다. 최 회장이 두 차례나 구속되고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의 곁을 지켰다”며 “가사에만 종사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시카고대학 경제학부 박사과정에서 최 회장을 만났을 때부터 미래와 사회에 대한 꿈과 비전을 함께 나눈 파트너였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자녀들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저는 육아와 내조를, 남편은 밖에서 사업을 하는 역할 분담을 한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저는 SK의 무형의 가치, 즉 문화적 자산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노 관장은 “SK 본사 서린동 빌딩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는 기술과 예술을 결합해서 불모지였던 미디어아트 영역을 개척한 SK그룹의 문화적 자산이다. 기술 중심의 미래지향적 기업 이미지와 맞는 영역이다. 시작부터 남편과 의논하며 설립했고 20년 가까이 SK 그룹과 협력하며 유지해 왔다”며 “여태껏 34년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제가 SK의 가치에 기여하면 했지 훼손한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재벌가의 재산 다툼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은 돈 보다도 가정의 가치”라며 “저의 경우는 보통의 이혼과는 다른 ‘축출 이혼’이다. 쫓겨난 것”이라고 했다.
그는 “1심 판결로 인해 앞으로 기업을 가진 남편은 가정을 지킨 배우자를 헐값에 쫓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여성의 역할과 가정의 가치가 전면 부인됐다”며 “이것이 제 마음을 가장 괴롭힌다. 이 판결로 갑자기 시계가 한 세대 이상 뒤로 물러난 것 같다”고 토로했다.
노 관장은 “재판부가 최 회장의 입장을 거의 100% 받아주었다. 1심 판결문을 받아 들고 나서 ‘재판을 더 받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도 했다”면서도 “딸과 함께 차를 타고 눈길을 운전하면서 ‘엄마 혼자 너무 힘드네. 여기서 멈출까’라고 물어봤다”고 했다.
그러자 딸이 ‘여기서 그만두는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은 싫다’고 대답했다고 전한 노 관장은 “그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며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다음 세대 아이들에게도 부끄러움과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가정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 가치의 훼손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친다”며 “사법부가 그것을 지켜주는 곳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사법부를 믿고 열심히 항소심 준비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 회장과 노 관장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세 자녀를 뒀으나 파경을 맞았다.
최 회장은 2015년 혼외 자녀의 존재를 인정하며 노 관장과 성격 차이로 이혼하겠다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밝혔고,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양측이 조정에 이르지 못하면서 이혼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고 입장을 바꾸고 맞소송을 냈다.
한편 최 회장 변호인단은 이날 노 관장의 언론 인터뷰와 관련해 입장문을 내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당사자 일방이 언론을 이용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태도에 대해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변호인단은 "1심 판결은 재산분할에 관한 새롭거나 특이한 기준이 아니며, 이미 오랜 기간 확립된 법원의 판단기준을 따른 것"이라며 "당사자가 한 인터뷰 내용 역시 수년간 진행된 재산분할 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주장됐던 것으로, 1심 재판부가 이를 충분히 검토해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