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경매시장이 냉각됐을 때는 수익성을 더 따질 수밖에 없는데 빌라는 아무래도 자산가치가 높아지기 어려우니 낙찰되기가 힘들죠. 거기에다 사연까지 있는 물건이라면 매각은 더 어려울 것입니다.”
2일 수원지방법원 성남1·6계 경매 법정에서 만난 50대 홍 모 씨는 ‘빌라왕’ 김대성 씨의 소유였던 빌라가 이날 경매에서 세 번째 유찰된 것을 보고 이같이 말했다.
이날 경매 개찰 시간인 오전 11시께 법정은 응찰자와 참관인들로 가득 찼다. 준비된 좌석 50여 석도 모자라 양옆과 뒤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날 70여 건에 대한 경매가 진행됐고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인 20여 건이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높지 않았지만 다세대주택·아파트·오피스텔·임야 등 다양한 물건이 낙찰됐다.
빌라왕 김 씨는 주택 1139채를 매입해 임대한 후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다가 지난해 10월 사망했다. 이에 전세 만기가 도래한 임차인들이 지난해 3월부터 보증금 반환을 위해 경매를 신청하면서 현재까지 경매에 부쳐진 물건은 총 47건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이들의 채권 청구액은 총 105억 754만 원에 달한다. 앞으로도 전세 만기가 도래하는 건들이 줄줄이 경매에 부쳐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김 씨 사망 이후 처음으로 경매에 부쳐진 물건이 이날 3회째 유찰된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에 위치한 빌라다. 임차인 신 모 씨는 대항력을 갖춘 ‘선순위 임차인’으로 어떤 경우에도 전세 보증금을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에 낙찰자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날 3회째 유찰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날 피해자인 신 씨는 법정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4회 유찰 후에 직접 매입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날 3회 유찰로 다음 달 4차 매각 기일의 최저 입찰 가격은 감정평가액 2억 6000만 원의 3분의 1가량인 8918만 원으로 떨어지게 됐다. 이는 임차인 신 씨의 전세 보증금 1억 8500만 원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금액이다. 그는 지난해 6월 1억 8500만 원을 청구하며 강제경매에 돌입했다. 이마저도 포천세무서가 먼저 당해 세금을 배당받은 뒤 남은 금액이 피해자에게 배당되는 구조라 신 씨가 받을 금액은 이보다도 적을 것으로 보인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소장은 “전세사기를 당한 임차인이 선순위 임차인일 경우 직접 낙찰을 받더라도 본인의 보증금 이하로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수인이 들어오기를 기다려보는 선택지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경매 물건 자체의 가치가 높지 않은 빌라의 경우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을 떠안고 빌라를 낙찰받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씨처럼 전세사기를 당한 세입자들의 경우 선택지가 거의 없는 만큼 정부에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대표인 배소현 씨는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하고 관련 법을 제정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