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여명] 태생부터 잘못된 민간단체 지원법

■김상용 여론독자부장

혈세 투입에도 감독권한은 빠져

DJ 때 제정 후 정치세력화 변질

정치활동 금지도 명목규정 불과

신뢰도 위해 정치권과 거리둬야





정부가 국고 보조금을 받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종료를 목표로 전면적인 자체 감사에 들어갔다. 비영리 민간단체의 국고 지원 선정 과정부터 회계 투명성까지 파헤쳐 정부 지원금 누수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윤석열 정부의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조사는 급작스럽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이 시작됐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윤석열 정부의 조사는 과거 정부가 하지 못했던 과감한 시도다.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의 뿌리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13개 시민단체에 6억 7600만 원을, 1996년 35개 단체에 9억 8800만 원을 지급했다. 당시 3개 관변단체(자유총연맹·새마을운동중앙회·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의 보조금 총액이 47억 7000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이 시작됐다고 평가받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간단체 지원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했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도 2000년 제정되면서 이들 단체 수는 급격하게 증가세를 탄다. 법 시행 시기인 2000년에 2471개 단체가 등록한 뒤 꾸준하게 증가세를 보여 2018년 말 기준 1만 4328개로 늘어났다. 법 시행 19년 만에 1만 4000개 넘는 단체가 만들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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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금 규모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최근 대통령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민간단체에 지급한 정부 보조금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1조 4000억 원에 달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정부 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이들 단체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법은 민간단체의 정의와 등록, 정부의 보조금 지원, 지원 사업 선정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법 제정 때부터 관리 감독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정부가 간섭할 수 있다’는 민간단체의 일방적 주장에 막혔다. 결국 민간단체는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관리와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그동안 면죄부가 주어졌던 셈이다. 특히 보조금을 받으면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법에 규정돼 있지만 이는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선언적 문구에 불과했다.

기형적인 한국의 비영리 민간단체의 성장에 대한 해외 석학들의 경고는 오래전부터 터져 나왔다. 필자가 2019년 e메일로 인터뷰한 시미즈 도시유키 삿포로학원대학 법학과 교수는 한국의 비영리 민간단체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 기반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사회를 활성화시켜 지지층을 넓히려 했다”며 “정치의 한 기법으로 시민단체 활성화를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김 대통령 이후에는 정치적 기반을 넓히기 위해 시민사회를 정치 세력화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면서 “정부 여당과 야당의 세력 싸움에 시민사회가 깊이 개입하면서 권력 투쟁은 더 치열해지게 됐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는 필자에게 “한국의 시민사회는 권력과 너무 가깝다”고 지적했다.

결국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시민사회를 육성한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정치적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손을 맞잡은 정치가 비영리 민간단체를 혈세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로 만든 셈이다.

기형적인 민간단체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1차적인 방법은 바로 정치권과의 거리 두기다. 1912년 설립된 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북미 소비자 단체인 ‘상업개선협회(BBB·Better Business Bureau)’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들은 정부 보조금도 받지 않는다. 오로지 시민들의 신뢰와 참여, 투명성과 공공성으로 버텨왔다. 정부 보조금에 의지한 한국의 비영리 민간단체가 모색해야 할 롤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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