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동향

[뒷북경제]"1조 쓰면 세금 2500억 깎아준다"…반도체 한파 넘길까





정부는 최근 ‘반도체 세액공제 강화 방안’을 내놓고 “주요 경쟁국 대비 최고 수준의 세제 지원책”이라고 자평했습니다. 세제 인센티브를 경쟁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만큼 앞으로 기업이 세 부담을 이유로 국내 투자를 주저할 일은 없다는 겁니다. 정부안대로라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은 명목상 국내 설비투자 비용의 최대 25%까지 공제받을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세 혜택(25%)을 받는 미국 기업이 부럽지 않은 수준입니다.



감면되는 세금을 추산해보면 지원 수준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개편에 따라 내년 세수가 당초 예상보다 3조 6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기업의 세 부담이 그만큼 낮아진다는 의미죠. 이어 2025년부터는 올해 대비 연 1조 3700억 원의 세 부담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SK하이닉스의 한 분기 영업이익(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1조 6555억 원)에 버금가는 규모입니다.

다만 한 꺼풀 들춰보면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대기업에 준다는 최대 25%의 세 혜택 중 10%포인트는 투자 증가분에 대한 공제입니다. 이는 당해 연도 투자액이 지난 3년 평균 투자액을 넘을 경우 증가분에 한해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조건부 혜택입니다. 그마저도 올해 투자에만 적용되는 한시 특례다. 정부는 최대 25%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지난 3년 동안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은 기업이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25%를 받기는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재고가 넘치는 상황에서 예년보다 투자 규모를 더 늘릴 기업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지원’이라는 정부의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안에 대해 “공제율이 8%에 불과했던 기존 안보다는 낫지만 조건부 혜택 없이 순공제율을 20%까지 높였던 여당안에는 못 미친다”면서 “한시적으로 늘려준 공제율을 덧대서 ‘우리도 다른 나라만큼 공제를 해준다’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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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조차 투자 증가분의 세 혜택 시한을 올해로 한정하지 않고 3년은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세수 급감 우려에 밀려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올해 같은 투자 혹한기에 그나마 돈을 쓸 곳은 사실상 삼성전자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투자를 한다고 한들 예년보다 과감한 수준으로 나설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습니다.

반도체 설비투자를 늘린다고 해서 무조건 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되려면 별도의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이를테면 반도체 설계자산(IP) 검증 기술이나 테스트 설비는 국가전략기술 목록에 올라 있지 않아 기업이 관련 설비를 들이더라도 공제를 받지 못합니다. 지원 대상을 추가하려 해도 심의하는 데만 통상 6개월가량이 걸립니다.

정부는 경기 침체를 넘겠다며 12년 만에 임시투자세액공제를 꺼내들었으나 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투자 증가분 세제 지원처럼 올해 투자에 한정해 세 혜택을 주기로 한 탓입니다. 한국은행이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을 -3.8%로 예상하는 등 다수의 기관이 역성장을 점치는 터라 큰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당초 의도한 만큼 민간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세 혜택 기한을 연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중으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통과를 조속히 추진할 것”이라면서 “이번 세제 지원 외에도 기업들의 투자 촉진을 위한 규제 완화와 역대 최대인 50조 원 규모의 시설자금 금융 지원 등 다각적인 방안을 지속적으로 살피겠다”고 말했습니다.


세종=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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