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마약 중독자들 사이에 동물 진정제 '자일라진'(xylazine)을 기존 마약에 혼합해 오용하는 경우가 급증해 보건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6월 발표된 연구를 인용,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마약을 검사해 본 결과 자일라진이 함유된 사례가 9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1962년 개발된 자일라진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수의사들이 말·소 마취제나 고양이 구토 유발제로 널리 쓰는 동물용 의약품으로, 상표명은 '럼푼'(Rompun)이다.
미국에서는 '트랭크(tranq)', '좀비 약(zombie drug') 등 속어로도 불리며,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말 마취제(anestesia de caballo)'라고도 불린다.
보도 내용을 보면 수도 워싱턴 DC, 그리고 50개 주 중 36개에서 유통되는 마약에 자일라진이 검출됐다. 뉴욕시에서는 마약 샘플 중 25%에서 자일라진이 나왔으나 보건당국 관계자들은 실제로는 이보다 더 널리 퍼져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전국 임상의들에게 4쪽짜리 자일라진 경고서한을 보냈다. 자일라진이 실제로 어느 정도나 퍼져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NYT는 지적했다.
자일라진은 2000년대 들어서 마약중독자들에 의해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NYT에 따르면 자일라진을 펜타닐 등 기존 마약에 섞어 주사로 투입할 경우 팔다리 등에 '가피(痂皮·eschar)' 혹은 '괴사딱지'라고 불리는 죽은 부스럼 조직이 생기며, 이를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
또 이런 방식으로 자일라진 혼합 마약을 투약하면 여러 시간 동안 정신을 잃기 때문에 성폭행이나 강도 등을 당하기 쉽다. 그 후 마약중독자가 깨어났을 때는 펜타닐 등의 효과가 이미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마약을 더 투약하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게다가 자일라진을 아편류 마약과 섞어서 투약한 경우, 마약류 과량투여에 대응하기 위한 널락손(naloxone) 투여 등 표준적 응급치료가 제대로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NYT는 '트랭크 마약'으로 흔히 불리는 자일라진 혼합 마약을 투약한 경험이 있거나 요즘도 투약하고 있는 중독자 여러 명의 사연을 전했다.
타투 아티스트인 브룩 페더(38)는 '트랭크 마약'을 투약했다가 뼈까지 상처가 번져 1년 전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하지만 그는 그 후에도 하루에 여러 차례 팔에 이런 마약을 주사하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금단증상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NYT는 5개월째 재활치료를 받는 다른 환자의 말을 빌려, 어떤 중독자는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절단한 후에도 절단된 다리의 남은 부분에 '트랭크 마약' 주삿바늘을 찌른다고 전했다.
마약 유통이 성행하는 필라델피아시 켄싱턴 지역의 마약중독예방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숀 웨스트팔은 "필라델피아는 이미 늦었다"며 "전국의 다른 지역이 이를 피할 방법이 있다면, 우리 얘기를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