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25% 수준이 그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의 90% 이상은 올해 소비와 투자가 지난해보다 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대학 교수, 공공·민간연구소 연구위원 등 경제·경영 전문가 85명을 대상으로 ‘2023년 경제키워드 및 기업환경전망’을 조사해 11일 내놓은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들이 전망한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평균치는 1.25%였다. 이는 기획재정부 1.6%, 한국은행 1.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8%, 국제통화기금(IMF) 2.0%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올해가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동의한다’는 의견을 낸 조사 대상자도 전체의 76.2%에 달했다.
올해 소비와 투자를 두고 ‘작년과 유사하거나 둔화될 것’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각각 90.5%, 96.4%에 이르렀다. 수출에 대해서는 78.6%가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이들이 내놓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 평균치(2.22%)도 주요기관의 예상치보다 대체로 낮았다. 앞서 OECD는 올해 세계 경장성장률을 2.2%,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4%, IMF는 2.7%를 각각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 경제 전망에 대해 ‘작년과 비슷하거나 악화될 것’이라고 답한 비율도 각각 71.4%, 75.0%였다.
새해 우리경제가 직면한 경제분야 위기 요인으로는 고금리 상황(24.5%)과 고물가·원자재가 지속(20.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수출 둔화·무역적자 장기화(16.8%), 내수경기 침체(15%), 지정학 리스크(13.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앞으로 정책당국이 금리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을 묻는 질문에는 미국 금리 수준(39.3%)을 꼽은 전문가가 가장 많았다. ‘경기상황’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3.8%였고 ‘부채상황’은 21.4%, ‘국내 물가 수준’은 15.5%로 집계됐다.
정부가 올해 중점을 둬야 할 경제정책 분야로는 미래전략산업 육성(25%)이 가장 많이 꼽혔다. 자금·금융시장 안정(23.8%), 경제안보·경제외교(11.9%), 수출 확대(9.5%), 산업·기업 구조조정(8.3%) 등의 응답이 그 뒤를 이었다. 반도체 이후 우리나라를 이끌 먹거리 산업으로는 배터리(21.2%), 바이오(18.8%), 모빌리티(16.5%), 인공지능(10.6%) 등이 제시됐다. 차세대 반도체가 계속해 우리 경제를 이끌 것으로 예상하는 응답도 5.9%였다.
지난해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44.1%의 전문가가 ‘잘함’으로 응답했다. ‘못함’은 41.7%, ‘매우 못함’은 8.3%, ‘매우 잘함’은 5.9%로 나타났다. 등급으로는 ‘B’로 응답한 비율이 29.8%로 가장 높았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갈등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 전원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갈등 이슈로는 정치적 갈등(58.3%)이 꼽혔다.
전문가들은 올해 경제를 표현하는 키워드로 ‘심연(Abyss)’ ‘풍전등화’ ‘첩첩산중’ ‘사면초가’ 등의 단어를 선택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진(Down the rabbit hole) 것과 같이 우리 경제가 어둡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를 드러냈다. ‘암중모색’ ‘중력이산’ ‘경제와 사회의 회복탄력성’ 등의 키워드를 제시한 전문가들도 있었다.
조성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로 접어들면서 소비가 크게 꺾이지 않았던 것,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 등 여러 산업기반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던 것 등이 상대적 선방의 요인들”이라며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바이오·방산·친환경 에너지 등 더 다양한 산업을 촉진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올해는 경기 불확실성에 대응해 주요 경제지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노동·규제·교육 등 주요 개혁 과제에 대해 성과를 만들어 가야 하는 해”라며 “주요 개혁과제는 미래 지속성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정책인 만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사회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강 본부장은 나아가 “결국 관건은 정부와 국회의 협력”이라며 “협치를 통해 주요 정책들을 신속하게 수립·집행해 국민의 정치 불신을 해소하고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