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5000억 원 규모 금융 자산을 운용하는 공무원연금공단이 올해 해외 사모펀드(PEF)를 통한 대체 투자에 적극 나선다. 국내PEF와 벤처캐피탈(VC)에 대한 출자는 예년 수준을 유지하되, 차별화된 전략이 있는 운용사만 선정할 계획이다.
백주현 공무원연금공단 자금운용단장(CIO)은 10일 서울 강남구 서울 상록회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지난해 해외 PDF(사모대출펀드)와 세컨더리(한번 PEF가 투자한 자산에 재투자) 펀드에 각각 1500억 원, 1200억 원 신규 출자를 약정했다"고 소개하면서 “중장기 대체투자 비중을 점차 상향하기 위해 올해도 해외 신규 출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투자 비중을 축소한 주식과 채권 등 전통자산은 올해 매력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안정적 현금흐름의 고금리 채권과 저가 매수 기회가 있는 주식에 자금을 분산하는 등 이 분야 투자 확대를 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대체펀드 신규 출자 지속…국내선 특화전략 고민
국내 최대 민간 투자 기관 삼성생명에서 대체투자를 담당했던 백 단장은 공무원연금에서도 새로운 대체 투자처를 찾는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에서 기회가 클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공무원연금이 지난해 신규 투자한 해외 PDF(Private Debt Fund·사모대출펀드) 운용사는 베어링, 골드만삭스, 골럽캐피탈 등 3개사다. 세컨더리(Secondary) 펀드는 아디안, 하버베스트파트너스, 렉싱턴 파트너스 등 3개사 상품에 투자했다.
세컨더리 펀드는 다른 기관을 통해 기 투자가 진행된 수익증권이나 사채 등을 최초 대비 싼 가격에 매입,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전략형 상품이다. 유동성이 고갈된 기관들이 급하게 현금화가 필요한 상황이 지난해 많아지자 세컨더리 운용사에 자산을 싸게 넘기는 사례가 늘었다. 이 기회를 포착한 공무원연금 등 국내 기관들은 지난해 세컨더리 펀드 투자에 적극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국내 사모펀드(PEF)나 벤처캐피탈(VC) 등에 신규 출자하는 금액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난해 공무원연금은 IMM인베스트먼트·SV인베스트먼트·아주IB투자에 총 450억 원을 출자했다. 다만 국내 대형 PEF들의 쏠림 투자를 지적했다. 여러 운용사에 나눠 출자해도 이들이 하나의 투자에 몰리면서 위험 분산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백 단장은 “과거에는 주로 공모를 통해 대형 운용사를 선정한 뒤 출자를 진행해 왔다"면서도 "이들은 비슷한 전략 위주로 투자가 이루어지는 등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에는 운용사의 특화된 전략이나 위기극복 능력에 중점을 두고 기존 투자했던 자산을 감안해 차별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변동성 장세 속 시장 대비 초과 성과
공무원연금은 지난해 이어진 급격한 금리 인상과 환율 상승, 증시 하락에도 비교적 운용이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한국과 미국 증시가 20% 내외 하락한 상황에서도 연초 이후 11월까지 전체 자금 운용 수익률은 -3.6%을 기록했다. 주식과 채권은 각각 -13.5%, -7.8% 수익률로 나빴지만 비중을 늘린 대체자산에서 7.8% 수익률을 내며 방어에 성공했다. 마이너스 수익률이기는 하지만 연금 중에서는 가장 선방했다. 지난해 세부 투자 전술을 바꿔가며 위험에 대응했던 덕이 컸고, 전통적으로 공무원연금이 가입자를 위해 상시로 현금성 자산을 보유했던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공무원연금은 특히 6~7년 전 투자했던 부동산을 지난해 상반기 매각하면서 높은 차익을 거머쥐었다.
서울 역삼 멀티캠퍼스와 부산 해운대 신라스테이 빌딩을 매각해 각각 내부수익률(IRR) 23.6%, 8.55%을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공무원연금은 2016년 3월 서울 역삼 멀티캠퍼스에 545억 원의 투자금 중 400억 원을 투자했는데 지난해 5월 매각하면서 연간 내부수익률(IRR)기준 23.6%의 높은 수익을 거뒀다.
부산 해운대 신라스테이빌딩은 2015년 삼성생명 등과 700억 원의 펀드를 조성했고 행정공제회는 260억 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6월 되팔면서 8.5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초부터 부동산 거래에 유동성 경색이 짙어지기 직전 팔았던 셈이다.
1970년생인 백 단장은 삼성생명 대체투자 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6월 공무원연금의 새 CIO로 부임했다. 공공과 민간을 통틀어 다른 조직에서 CIO를 맡지 않았던 젊은 피가 낙점되자 업계에선 '파격'이란 말이 나왔다. 그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하며 부임 첫해 좋은 성적표를 받아 들었고 올해에도 이 같은 성과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지난해 국내 채권과 국내 주식 비중을 낮췄고 해외주식 ETF 등으로 자금을 분산하며 변동성에 대응했다"며 "현금성 자산을 늘려둔 것은 하반기 불거진 레고랜드 사태와 부동산PF 시장 혼란 속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반기엔 해외 대체 상품에 신규 투자해 잠재 수익원 확보를 꾀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연금은 대체자산 투자를 꾸준히 늘린 결과 이 분야 비중이 자금 운용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주식 자산 대비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대체자산이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2.9%인 반면 반면 채권과 주식은 각각 34.3%, 25.1%였다.
“고금리 채권, 우량기업 투자 엿볼 것”
백 단장은 올해 채권에서 투자기회가 있다고 본다. 그는 "금리가 높아져 타 자산 대비 안정적인 채권에 투자해도 단기 목표를 초과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면서 "일시적 유동성 문제에 빠진 우량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것은 상당한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에는 다소 선을 그었다. 그는 "장기로 발행된 PF 채권을 단기물로 잘라 투자하는 부동산 자산유동화증권(ABCP)에는 아직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서 "이 시장에서 위기가 번진 것이 불과 지난해 하반기였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인프라,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서 거둘 수 있는 이자 수익 기회는 있을 것으로 본다”며 “타 기관과의 공동투자를 통해 수익 기회를 발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주식 시장을 어떻게 예상하느냐는 질문에는 "상반기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국내 실물 경기도 둔화돼 증시 변동성은 지속되고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지원 확대 기대감이 커지며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면서 "아시아 신흥국에서 투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데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강달러, 반도체 가격 약세 등 부정적 요소들의 완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 자산 투자에서 해외 비중을 늘려나갈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백 단장은 "글로벌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국내 주식과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면서 “안정적 성과를 위해 국가별 투자 비중 조정은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임세원 기자 why@sedaily.com, 이충희 기자 midsu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