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규제 완화, 보조금 지급 등으로 친환경 산업을 지원해 관련 기업·기술의 역외 유출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북미 생산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는 IRA 규정을 수정하기 위한 미국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비슷한 내용의 법안으로 본격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8일(현지 시간)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2030년 친환경에너지 생산 시장 규모가 현재의 3배로 커질 것이라며 “미국이 IRA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IRA에 대한) 우리의 답은 ‘그린 딜(Green deal) 산업 계획’”이라며 계획의 핵심 수단으로 탄소중립산업법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그린 딜은 EU 집행위가 2019년 내놓은 기후변화 대응 종합 대책이다. EU는 최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에 합의하는 등 IRA 대응 수위를 높여 왔는데 이날 법안을 비롯한 종합적인 산업 계획을 추진할 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다.
아직 초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탄소중립산업법은 규제 완화 및 보조금 지급 방식으로 EU의 환경 관련 산업을 키우는 데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클린테크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데 허가가 너무 느리고 복잡하다는 불만이 많다”며 “탄소중립산업법으로 이를 신속·간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탄소중립산업법은 (EU의) 반도체법과 동일한 형태로 설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EU 회원국 장관들이 합의한 반도체법은 민관이 430억 유로의 기금을 조성해 EU의 반도체 산업에 투자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다만 탄소중립산업법 시행 시 부담이 클 것으로 전망되는 ‘EU 1위 경제 대국’ 독일이 부정적인 반응이어서 합의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BBC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 경쟁은 피해야 한다”며 미국과 EU가 IRA 수정 협상을 이어가거나 새 무역 협정을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날 유럽의회에 출석한 샤를 미셸 EU 이사회 상임의장은 “미국이 대규모 보조금 정책을 활용하고 있고 중국은 기술 분야에 국가 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다”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