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최근 ‘꼼수’가 난무하는 법이 있다. 그 주인공은 국회법 제86조, 체계·자구의 심사에 관한 조항이다. 해당 조항이 2021년 9월 개정된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법안이 60일 이상 계류할 경우 상임위원회 의결로 본회의에 직회부가 가능하다. 바로 이 ‘본회의 직회부’를 둘러싼 정쟁이 계속되고 있다.
여야가 16일 법사위에서 충돌한 이유도 국회법 제86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위원장이 본회의에 직회부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 없이 직권 상정하면서다. 정부의 쌀 시장 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앞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야당 단독 의결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법안이다.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본회의 직회부는 개정된 국회법 제86조가 적용된 첫 사례이자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내어준 뒤 찾아낸 ‘묘수’였다. 원내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상임위에서 수적 우위를 앞세워 법안을 통과시켜도 법사위원장이 법안 심사를 미루면 본회의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에 민주당은 농해수위에서 양곡관리법을 강행 처리한 뒤 법사위에서 계류한지 60일이 지나자 본회의 직회부도 관철했다.
국민의힘이 찾아낸 반격 카드는 법사위 ‘2소위 회부’ 전략이다. 김 위원장은 양곡관리법과 함께 민주당의 본회의 직회부가 예상되는 방송법, 간호법 개정안 등을 법안심사 제2소위에 회부했다. 국회법 제86조 제3항에 적힌 것처럼 법안이 ‘이유 없이’ 법사위에 계류하는 게 아니라면 해당 조항을 적용해 본회의 직회부를 할 수 없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다. 양곡관리법은 이미 직회부 절차를 막을 수 없지만 방송법·간호법등은 2소위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법사위 계류는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이에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법사위가 법안을 소위 회부만 해놓고 이런저런 핑계로 심사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와 민주당의 권능을 활용해서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것을 미루지 않겠다”며 “방송법 개정안이나 간호법·의료법 등 여러 법안이 특별한 이유 없이 법사위에 붙잡혀있을 경우 2월 국회부터는 본격적으로 처리한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양곡관리법은 민주당이 예정했던 대로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양곡관리법이 본회의에 상정되려면 농해수위에서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한 지난해 12월 28일로부터 30일이 지나야 한다.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본회의에서 상정 여부를 무기명투표로 정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 단독으로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양곡관리법이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유례 없는 국회법 적용으로 인한 여야 갈등은 심화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