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업체들이 '신명품' 세대교체 작업에 착수했다. 신명품은 기성세대 명품인 일명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대신 20~30대가 선택한 해외 고가 패션을 뜻한다. 그동안 주식·가상화폐로 돈을 벌거나 해외여행 대신 의류 구매를 즐기는 젊은층 덕에 호실적을 거뒀지만,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 현상에 올해부터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이자와 세금 등 비소비 지출과 거리가 먼 20대들의 지갑이 닫혀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면서 이들의 눈길을 잡기 위한 새 브랜드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지출전망 CSI(소비자동향지수) 항목 중 의류비는 93을 기록했다.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낮을수록 의류를 구매할 의향이 없다는 의미다. 같은 달로 비교해보면 지난달 CSI 의류비 지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임이 제한된 2020년 12월(89)을 제외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12월(81)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단가가 높은 패딩 구매가 많아 패션 성수기로 불리는 겨울마저 소비심리가 위축돼 위기감이 높다"며 "올해의 경우 지난해 실적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으로 내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적 한파가 예상되자 패션 업체들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은 신명품 카테고리의 간판 브랜드를 기존 아미·메종키츠네·톰브라운에서 지난해 말 자크뮈스·스튜디오 니콜슨·가니로 바꾸고 대형 백화점에 단독 매장을 열고 있다. 그동안 아미와 톰브라운의 인기에 힘입어 고성장을 이뤘지만, 앞으로 성장 동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지난해 톰브라운의 매출이 전년 대비 20% 증가할 때 자크뮈스 매출은 100%의 신장률을 보였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자크뮈스는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브랜드로, 나이키 등 스포츠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대표 제품인 '밤비노' 가방의 판매율은 70%에 달한다. '하트 로고'로 20대 패션의 대표 아이콘이 된 아미의 뒤를 이을 브랜드로는 '스마일 로고'가 특징인 덴마크의 패션 브랜드 가니를 내세웠다. 삼성물산 패션 관계자는 "자체 편집숍인 10 꼬르소 꼬모와 비이커를 통해 차세대 신명품 브랜드를 지속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알렉산더왕과 사카이를 올해의 주력 신명품 브랜드로 밀고 있다. 뉴욕에서 탄생한 알렉산더왕은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엔데믹에 맞춰 각종 모임이 늘어나면서 각광을 받고 있는 브랜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2011년 계약을 맺고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신장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스웨덴 패션 브랜드 '토템'을 품은 한섬도 올 하반기까지 해외 패션 브랜드 수를 2배 가량 확대해 20여 개로 늘리고, 오는 2027년까지 해외패션 연 매출 규모를 1조 원으로 키운다는 목표다.
백화점들 역시 신명품을 추구하는 젊은 고객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수시로 입점 브랜드들을 바꿔야 하는 ‘영패션’ 구역의 경우 백화점 상품기획자(MD)들 사이에서 가장 악명이 높을 정도다. 대신 MD들의 발빠른 대응은 실적으로 이어진다. 신세계백화점이 지난해 8월 13년 만에 강남점 5층 영패션 전문관을 '뉴컨템포러리'로 바꾸고 1000평 규모 매장을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로 채우자 매출이 이전 대비 30% 증가한 게 대표적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