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생의 ‘문과 침공’과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쏠림 현상은 입시는 물론 대학 체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과생들이 교차 지원으로 인문 계열에 합격한 뒤 의·약학 계열에 진학하기 위해 반수·재수에 나서면서 문과생들의 진학 기회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대학들의 학생 충원에도 비상이 걸렸다. 입학 후 이뤄지는 이과생들의 연쇄 이동이 대학 서열화·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가뜩이나 충원난을 겪고 있는 지역 대학을 고사 위기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카이(SKY)’로 불리는 서울·연세·고려대와 서강·성균관·한양·중앙·경희·한국외국어·시립대 등 서울 주요 10개 대학명의 첫 글자인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는 수험생들이 공식처럼 외우는 대학 서열이다. 2010년대 들어 대학가에서는 맨 앞자리에 ‘의·치’를 넣어야 한다는 자조가 나온다. 학업 성적이 우수한 이과 학생들의 의·치대 선호 현상이 거세지면서 합격 커트라인이 서울대 자연 계열의 주요 학과보다 높다는 이유에서다. 고교·학원에서도 내신 1등급 학생의 입시 전략을 짤 때 ‘의치한약수’가 SKY 주요 학과보다 우선 고려되는 대상이다.
이과생들이 대학 입학 단계는 물론 진학 후에도 의·약학 계열로 몰리거나 빠져나가면서 ‘인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서 학생들의 연쇄 이동이 이뤄지고 여기에 지역 대학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서열화·양극화가 깊어지는 양상이다.
실제로 수도권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은 2019년 99.3%에서 2021년 99.2%로 소폭 감소한 것에 비해 지역 대학은 같은 기간 98.6%에서 92.2%로 6.4%포인트나 줄었다. 2021년 재학생 중도 탈락 비율이 10%를 넘은 4년제 일반 대학 24곳 중 22곳이 지역 대학이었다. 학령인구 감소로 미충원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서울·수도권으로 이동하면서 지역 대학들은 재학생 충원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