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개인과 기업·정부로 이뤄지는 만큼 이들의 경쟁력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 우리에게 세 주체의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묘수가 있다면 그것은 노동 개혁이다. 노동 개혁은 개인의 동기를 강화하고 그 개인을 고용하는 기업과 정부의 경쟁력도 강화한다. 더 나아가 노동 개혁은 미래 대비 긴요한 사회적 합의를 쉽게 하는 효과도 있다. 현 정부도 노동 개혁을 3대 개혁 중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의 효과적인 추진 전략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개혁의 추진 전략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개혁의 우군 확보다. 노동 개혁은 국민의 지지와 함께 노동자의 86%를 차지하는 비노조원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둘째, 개혁의 피해 계층에도 보상 내지 변화 동기를 줘야 한다. 셋째, 전체의 변화가 어려울 때는 각 부분에 자율을 주는 전략이 유용하다. 노동 개혁의 의제별로 이러한 추진 전략을 적용해보자. 노동 개혁의 의제는 근로시간, 임금체계, 노사 관계로 요약되나 경영계는 저성과자 해고도 의제라고 주장한다.
연장근로 기준, 다양성 인정해야
근로시간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구성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제안이 나와 있다. 주 52시간제 기조를 유지한 채 연장근로 시간 산정 기준을 현행 주간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간 등으로 늘리는 안이다. 이때 기준 기간을 늘릴수록 총 근로시간을 줄여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보상이 성립한다. 문제는 월~연간 중의 선택인데 이를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업종별 차등이나 노사 자율도 가능하겠으나 발상을 전환해 시도지사의 권한으로 하기를 권한다. 행정부나 국회 모두 지방의 권한 강화를 꺼리는 경향이 있으나 첨예한 사안은 지방의 권한으로 돌려 서로 경쟁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노동계의 지지를 얻으려면 포괄임금제 폐지를 같이 추진해야 한다.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일정액의 수당을 기본급에 더해주는 제도로, 속칭 ‘공짜 야근’을 유발한다. 이는 입법 사항이 아니므로 정부는 포괄임금제를 겨냥한 근로 감독을 시행할 계획이다.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근로 감독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근로 감독 청원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 내부자 신고보다 더 효과적인 감독은 없다. 한편 경영계가 주장하는 저성과자 해고는 현 시점에서 논의 주제로 부적절하다. 고용의 유연성은 근로시간과 임금의 유연성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근로시간 상한선만 논의하고 있으나 하한선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호봉제 폐지, 직군·직종별 분리 바람직
호봉제 폐지의 당위성은 박근혜·문재인 정부 모두 공감한 사안이다. 문제는 전략인데 연구회의 제안과 같이 기업 내 직군·직종별 분리 추진도 좋은 방안이며 이를 위한 임금체계 정보 제공도 필요하다. 호봉제를 유지하는 기업에는 정부 지원을 제한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임금체계는 노사 자율이므로 그 정도로 호봉제가 폐지될 것 같지는 않다. 호봉제 폐지에 대한 중참들의 반대는 거세다. 지금까지 생산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감수하며 마침내 이를 보상받는 시점에 왔는데 앞으로는 생산성만큼만 받으라니 약속 위반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보상이 필요하다. 총근무 연수 중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는 기간이 예컨대 20년을 초과하는 근로자에게만 정년을 넘어 근무할 권리를 부여하면 어떨까. 정년 연장은 노조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이나 공공 부문 종사자만 덕을 본다는 문제가 있으나 그들은 호봉제 폐지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집단이기도 하다. 호봉제 포기의 대가로 정년 연장 정도는 줘야 한다. 정년 연장이 청년실업을 가중시킬 수 있으나 2002년 이후 출생자들이 채용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올 2~3년 후부터는 청년고용 사정이 나아질 것이다. 출생자 수가 2000년에 63만 7000명이었으나 2002년에는 49만 5000명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공 부문의 솔선수범도 필요하다. 호봉제를 폐지한 공공기관의 임금 상승률을 더 높게 할 것을 제안한다. 호봉제가 없어지면 생산성도 올라갈 것이므로 임금을 더 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다. 공무원에게도 이 전략을 적용하려면 부처별로 임금체계를 달리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공무원에 대해서도 지자체별 호봉제 폐지를 국고보조금과 연계하는 전략을 권한다. 호봉제 폐지 수준을 측정하는 기준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와 같이 호봉제 폐지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으로 나눠 추진해야 한다.
파업권 인정하되 불법점거는 강력 처벌을
노사 관계의 핵심은 노조의 파업권이며 파업권은 대체근로와 사업장 점거 허용 여부에 달려 있다. 사측은 광범위한 대체근로 허용과 사업장 점거 불허를 주장한다. 그러나 대체근로는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대폭적인 대체근로 허용은 노조의 파업권을 과도하게 제약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업장 불법점거는 강력히 처벌돼야 한다. 과거에는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사업장 불법점거가 관행처럼 돼왔다. 이때 강력한 집행이란 노조의 불법행위를 민사소송으로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30인 미만 사업장도 근로자 총회에서 대표를 뽑고 노사협의회에 상정하는 안건을 확대해야 한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제고돼야 한다. 노조 회계의 투명성과 함께 기업회계의 투명성도 강조돼야 한다. 그래야 노총의 반발도 피하면서 노동자 86%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추진 시점·체계도 신중히 고려해야
근로시간과 포괄임금제는 상반기 중 정부안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근로시간에 대한 여야 합의가 어려울 경우 최종 합의를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루는 것도 한 방안이다. 그렇다고 지금 개혁을 중단하고 총선 이후를 기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혁의 불씨는 계속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임금체계 개편에는 노사 합의가 필요하므로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공공기관의 호봉제 폐지는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사안이므로 올 상반기에 먼저 추진할 만하다. 반면 공무원 호봉제 폐지는 공공기관의 성과를 봐가며 내년 이후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노동과 교육 등의 개혁을 추진해야 할 공무원 조직을 지금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간의 정년 연장과 호봉제 폐지 연계는 국회특위가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결정을 한 후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연금 수령 시기가 현행대로 유지될 경우에는 총선 이후 청년실업 추이를 감안하며 호봉제와 정년 연장의 연계 논의를 개시하면 될 것이다.
노사 관계는 올해 상반기에 비노조 근로자의 권익 보호 강화와 함께 노조 및 기업회계·임금체계의 투명성을 화두로 삼기를 권한다. 필요한 입법도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이와 함께 노조의 사업장 점거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법적 대응으로 관행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상의 개혁은 누가 추진해야 할까. 올해의 개혁은 노동부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추진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올해 말쯤 경사노위를 국회로 옮겨 총선 이후의 노동 개혁에 대비할 것을 제안한다. 법 개정이 필요한 노동 개혁은 결국 국회가 최종 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 경사노위가 대통령 직속으로 있다면 그 결정은 끝이 아니므로 민주노총 등이 참여할 이유가 없다. 여소야대인 지금이 경사노위를 국회로 이관할 호기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노동 개혁이 꼭 성공했으면 한다.
박 교수는…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입사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30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에서 공공기관 개혁을 담당했으며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 국회미래연구원 원장 등도 지냈다. 좌우에서 인정받는 중도적 학자로 남는 것을 평생 목표로 삼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어떻게 바꿀 것인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