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개인 소비가 급감했다는 지표가 잇따르면서 미국이 경기 둔화의 한 형태인 ‘롤링리세션(순차침체·Rolling Recession)’에 이미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롤링리세션은 경제가 일시에 침체로 빠져드는 대신, 한 분야나 지역에서 시작된 둔화가 마치 도미노처럼 다른 부문으로 영향을 미치는 형태의 경기 둔화를 말한다.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가 선언되지 않을 수 있지만, 해당 부문의 체감 경기 악화는 뚜렷하다.
앞서 27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12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발표에서 세부 지수인 소비 지출이 전월 대비 0.2% 하락했다고 밝혔다. 두 달 연속 감소세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계산방법으로는 소비 하락폭이 -0.3%로 더 컸다. 0.1% 하락할 것으로 봤던 시장의 전망을 하회한다.
이는 인플레이션보다 소비가 더 빠르게 둔화한다는 의미다. 이날 PCE 가격지수는 4개월 연속 하락해 전년 동월 대비 5.0%로 시장의 전망치에 부합했다. 물가는 예상대로 떨어지지만 물가를 고려한 소비는 예상보다 크게 떨어진 셈이다. 미국의 소비가 단지 물가가 올라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이는 차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에프레임 벤멜레치 노스웨스턴대 금융학과 교수는 “기준금리 상승 영향으로 모기지 금리가 올라 주택부문이 가라앉았다”며 “이 영향으로 이사를 들어가거나 집을 팔기전 주로 구매가 이뤄지는 페인트나, 가전제품, 다른 가정용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를 롤링리세션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는 “국내총생산(GDP) 등 전체 경제 수치는 앞으로도 마이너스로 돌아서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미 롤링리세션은 진행 중”이라며 “경제 둔화가 이미 깊은 침체를 겪고 있는 부동산에서 시작해, 그 영향이 소비로 이어지고, 소비 불안이 기업들의 재고나 자본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경제 전반의 호조가 이어지는 듯 하지만, 수면 아래에는 부동산과 소비 둔화가 차례대로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앞서 4분기 GDP는 시장 전망치보다 높은 2.9% 성장했지만, 민간 수요의 가늠자격인 ‘민간 국내 구매자에 대한 최종판매’ 수치는 전 분기 1.1%에서 4분기 0.2%로 급감했다.
롤링리세션이 미국 경제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라는 주장도 나온다. 부동산과 상품 소비 등 차례차례 둔화가 전달되는 사이, 아직 영향을 받지 않는 서비스업종 등이 전체 경제 수치를 지탱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찰스슈왑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리즈 안 손더스는 “우리는 경기 침체 대 연착륙이 적절한 논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미 우리는 롤링리세션이라는 경기 침체의 한 형태 내에 있으며 전미경제조사국(NBER)이 침체를 선언할지 아닐지는 현시점에서는 그저 학술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롤링 리세션이 공식적인 침체로 이어질 지 여부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지속기간과 강도가 결정할 전망이다. 손 교수는 “1970년대와 달리 최근의 인터넷을 이용한 빠른 정보교류와 연준의 투명한 정보 공개로 통화정책 결정 이후 실제 경제에 영향이 나타나는 기간은 상당히 단축됐다”며 “통화정책에 대한 반응은 이미 경제와 금융시장에 나타나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로서는 긴축을 강화하거나 장기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연준이 30일부터 다음달 1일 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상 중단 메시지를 낼지 주목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 따르면 2월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확률은 98.4%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