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일(현지 시간)이면 취임 100일을 맞는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정치적 수세에 몰렸다. 장관 등 주요 공직자들이 각종 논란에 휩싸인 끝에 잇따라 낙마하면서 그의 리더십도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야당인 노동당은 ‘수낵 총리가 너무 나약해 국정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취임 44일 만에 최단명 총리로 퇴진한 리즈 트러스 직전 총리를 대신해 ‘구원 투수’로 나선 수낵 총리가 내년 총선까지 보수당을 이끌고 완주할 수 있을지 불안한 시선들이 그를 향해 있다.
수낵 총리가 전날인 29일 세금 미납 문제로 논란을 빚은 나딤 자하위 보수당 의장을 ‘장관법 위반’을 이유로 결국 해임하자 현지 언론들은 ‘수낵 총리에 상당한 후폭풍을 안길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로 치면 당 사무총장과 유사한 보수당 의장은 총선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고 내각에서도 특정 부처는 관장하지 않지만 직위는 장관인 무임소장관이다. 그런 핵심 요직의 인사를 수낵 총리가 직접 내쳤으니 충격파가 상당할 것이란 의미다.
자하위는 2000년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를 공동 창업한 뒤 자신의 지분을 그의 가족 신탁 회사에 맡겼고, 이후 유고브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2018년 해당 주식을 매각했는데 영국 국세청은 이 과정에서 자하위가 370만파운드(약 56억3200만원) 상당의 자본 이득세를 고의로 납부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자하위가 교육부와 재무부 장관 등을 지내며 각종 공직자 검증을 받아온 주요 정치인이란 점이다. 특히 국세청은 2년 전인 2021년부터 이미 자하위의 세금 미납과 관련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사태가 수낵 총리가 논란을 예상하고도 자하위를 핵심 보직에 앉혀 발생한 ‘인사 참사’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다. 가디언은 “수낵 총리는 최근에야 (자하위 세금 미납) 문제를 알았다는 입장이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수낵 내각의 윤리 위반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개빈 윌리엄슨 전 국무장관이 동료에게 폭언을 했다는 의혹으로 수낵 총리 임기 중 처음으로 중도 낙마했고, 법무부 장관인 도미닉 라브도 과거 직원을 괴롭혔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았다. 더타임스는 “청렴성과 책임감을 앞세워 ‘파티 게이트’로 무너진 보리스 존슨 내각과 차별화를 강조해온 수낵 총리가 매우 곤혹스러워졌다”고 비판했다.
노동당은 논란을 총리의 ‘자질 문제’로 끌어가고 있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최근 의회에서 “수낵 총리가 힘이 없어 문제가 있는 공직자들을 내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 총리직이 버거우면 그만두라”며 맹공을 펼쳤다. BBC는 “정부 내에서 총리가 ‘너무 착하다(nice)’는 말까지 돌고 있다”고 전했다.
설상가상으로 ‘수낵의 천적’처럼 된 존슨 전 총리를 후임 보수당 의장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수낵은 지난해 각종 비위로 흔들리는 존슨 내각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며 서로 악연을 맺은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더타임스는 다음 달 1일 교직원 수백명이 10년 만 최대 규모로 파업에 돌입하고, 같은 날 철도·버스 등 교통 부문 노조도 파업을 예고하는 등 심각한 현지 파업 문제도 수낵 총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취임 100일 기념일이 ‘최악의 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