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부자요? 흔히 돈 많은 대기업 회장을 얘기하고는 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경주 최부잣집,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 간송 전형필 등이 진짜 부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부자의 모델이죠. 이들처럼 살아간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 최초로 ‘부자학’을 창시한 한동철(65·사진) 서울여대 교수 겸 한국부자학회장은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돈이 많다고 모두 부자는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2004년 서울여대에 부자학 강의를 처음 개설한 한 교수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경주 최부잣집 12대손 최염 옹을 비롯해 약 2만 명의 대한민국 대표 부자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자학 강의’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부자를 돈의 많고 적음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에게 부자란 물질적인 여유를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가문 또는 집안이다. 구체적으로 재산 축적은 법률적인 문제없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고 기부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헌을 해야 한다. 한 교수는 “부자를 물질 소유 여부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이 합의한 내용”이라며 “중요한 것은 정신과 물질로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는가 하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자는 혼자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내가 돈을 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면서 이뤄지는 결과라는 것이다. 한 동네에 식당 한 곳이 번창하면 주변 다른 식당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남이 이룰 수 있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한 교수가 ‘선악후선(先惡後善)’이라는 독특한 철학을 내놓는 이유다. 그는 “부자가 된다는 것,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사회적·경제적 파이가 그대로인 한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가진 사람들의 선행, 사회적 책임이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사회적 공헌에 조건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롤 모델인 면세 기업 애틀랜틱필랜스로피의 설립자 척 피니 의장처럼 무조건적인 선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수성가 억만장자인 피니 의장은 평생에 걸쳐 모은 재산 약 9조 원을 아무 조건 없이 사회에 환원해 ‘아름다운 기부왕’으로 불린다.
물론 이런 인물은 흔하지 않다. 한 교수는 피니 같은 사람이 등장할 가능성을 1만분의 1보다 낮게 본다. 조건 없는 선행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그는 “최근 한 유명인이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면 나머지 절반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이는 거래일 뿐 기부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한 교수는 아끼고 아껴 돈을 모은 ‘짠돌이’가 진정한 부자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밥값을 아끼기 위해 남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고 화장실을 서너 번 간 후에야 물을 내리며 모은 재산인데 과연 남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남들이 볼 때 수천억·수조 원을 가진 부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 전문가에 따르면 부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줄 수 있는 액수가 1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며 “자신이 고생한 결과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게 이들에게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교수는 요즘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한다. 우리나라 중산층을 부자의 롤 모델로 삼는 것이 그것이다. 봉급생활자가 대부분인 중산층은 불법을 저지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부를 쌓는 과정도 투명하다. 적지만 기부를 통해 사회적 기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 ‘소(小)부자’들을 조직이나 단체로 엮고 이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다면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는 “진짜 부자가 많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부자들을 협동조합 형태로 묶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며 “돈으로 되는 일이 많지 않고 부를 목표가 아니라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나라는 부자가 많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