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김광수 특파원의 中心잡기] 코로나, 핑계는 사라졌다

위드코로나에 각종 행사 재개되며

대사 브리핑도 5개월만에 열리지만

현장질문·민감한 사안 답변 않기로

'행사 취소될 때가 좋았다' 생각 말길

정재호 신임 주중대사가 지난해 8월 1일 오전 베이징 주중대사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정 대사는 취임 6개월이 지났지만 코로나1 상황에 제대로 된 외교활동을 할 수 없었다. 연합뉴스정재호 신임 주중대사가 지난해 8월 1일 오전 베이징 주중대사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정 대사는 취임 6개월이 지났지만 코로나1 상황에 제대로 된 외교활동을 할 수 없었다. 연합뉴스




“코로나 때문에(因爲疫情)….”



중국에서 지난 3년간 가장 많이 쓰인 말이다. 무슨 일이든 코로나19 핑계가 통했다. 중국 정부나 기관이 예정된 일을 연기할 때도, 계획했던 행사를 취소할 때도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들면 그만이었다. 중국에 있는 우리 기업들이나 주중대한민국대사관도 마찬가지다. 현장 행사는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기 일쑤였고 일상적인 업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지난해 12월 7일 중국 국무원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사실상 폐지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처음 한 달가량은 중국 전역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약이 동나고 병원에는 환자가 몰려들었으며 사망자가 폭증했다. 그러다가 올해 1월 중순 무렵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부분의 것들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중국 상황을 걱정하며 안부를 묻지만 막상 현지는 거의 코로나가 종료된 분위기다.

모든 게 정상화되면 마냥 좋을 것만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차량 호출 서비스는 평소에 비해 호출 요금도 오르고 차량 배정 시간도 길어졌다. 차를 타고 이동하려면 곳곳이 정체이고 식당을 가도 기다리기 일쑤다. 요즘 교민이나 주재원 사이에서는 “코로나 때가 좋았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특히 주재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입국자 격리가 사라지고 입국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한국에서 오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황을 점검하려는 임원진과 책임자들의 방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때문에 발목이 잡혔던 현장 감사와 설비 보수 인력도 중국 방문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서 사람들이 올 수 없던 지난 3년이 오히려 행복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최근 한중 양국이 일부 비자 발급을 중단하자 “시간을 벌었다”며 조용히 웃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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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한국 업무를 총괄하는 주중대사관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중대사관은 코로나19 상황에도 외교 업무나 영사 서비스를 중단한 적은 없었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이유는 코로나였다. 불리할 때는 코로나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고는 했다.

국정감사와 국경절(개천절) 리셉션 행사가 열린 지난해 10월이 대표적이다. 최대한 노출을 피하고 싶었던 국감에는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취재진 수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반면 대사관 주최 리셉션에는 인원 제한이 거의 없었다. 불과 며칠 전 코로나를 핑계로 취재 인원 1명 늘리는데도 민감해하던 대사관은 리셉션에 500여 명의 참석자가 모였다고 홍보했다. 국감은 실내, 리셉션은 실외라는 차이가 있었다지만 실내외를 막론하고 50명 이상이 모이는 행사를 사실상 하지 말라던 당시 방역 규정을 고려하면 이 역시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매월 첫 월요일에 열리게 돼 있는 대사 주재 브리핑도 4개월째 열리지 않았다. 주된 이유는 코로나19였다. 그동안 벌어진 다양한 이슈에 대해 중국 내 한국 정부의 최고 책임자의 설명을 들을 기회는 없었다.

이달 6일, 5개월 만에 드디어 대사 브리핑이 열린다. 그런데 사상 유례없는 해괴한 방식의 브리핑이 예고됐다. 기자들은 브리핑에서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다. 대사관 측은 앞서 3일 오후 5시까지 접수된 사전 질문에만 답변하되 질문 중 민감한 사안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한다. 현장 질문은 금지됐다. 사흘 전까지 받은 질문만 허용하니 주말 동안 미중 사이에 이슈가 된 중국 정찰 풍선 등에 관한 질문은 꺼낼 수도 없다. 특파원들은 브리핑 현장에 입도 뻥긋 못하고 병풍처럼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기자회견이 부담스러웠던 전직 대통령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초유의 브리핑 방식을 두고 특파원들은 여러 개선안을 건의했지만 대사관 측 입장은 한결같다. 서로 신뢰할 수 없는 만큼 자신들도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사관의 입장은 존중하지만 브리핑 이후에 이런 생각만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코로나 때문에 브리핑하지 않아도 됐던 시절이 좋았다’고.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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