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의 포항공대(POSTECH·포스텍) 내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이 8일 방문한 이곳에는 암모니아 혼합 연소 실험실과 암모니아 분해 수소 추출 실험실이 있다. 전자는 천연가스에 무탄소 연료를 혼합해 이산화탄소 발생을 감소시키는 연구를 한다. 후자는 촉매를 활용해 암모니아를 고온에서 질소와 수소로 분해한 뒤 분리·정제해 고순도 수소를 생산하는 게 목표다. 이 연구는 포스코가 호주에서 태양광발전을 통해 생산한 그린수소를 암모니아 상태로 들여올 때 깨끗한 수소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RIST는 에너지기술연구원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암모니아 혼합 연소는 2025년 파일럿(시험) 설계 기술을 실용화하고, 암모니아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은 그 이후 단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 연구소는 원전에서 나온 전기로 그린수소를 만드는 연구도 포스텍과 협업하고 있다. RIST 원장 출신인 유성 포스코 고문은 “혼소 기술은 일본이 먼저 했으나 우리가 상당히 추격했다”며 “그린수소 생산은 일본이 열정적으로 하는데 우리도 뒤지지 않게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RIST 인근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을 적용한 제철 현장도 기후위기 대응 기술이다. 값싼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원료로 쇳물을 생산해 경제성이 높고 공해 물질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포스코는 중장기적으로 제선 공정의 환원제와 열원으로 쓰이는 석탄을 수소로 대체하는 수소환원기술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이산화탄소 발생 없이 철을 만드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포항에서 가동 중인 유동환원로에서 수소 농도를 단계적으로 높여나갈 계획이다. 유 고문은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유럽과 일본 철강사들이 우리와는 다른 공법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며 “우리는 2026~2027년 파일럿 설비 건설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현재 수소환원제철의 전 단계로 공정 개선을 통해 적용할 수 있는 탄소포집활용저장기술(CCUS)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 기술은 탄소를 흡수해 땅에 묻거나 친환경 연료와 드라이아이스 원료 등으로 쓰려는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CCUS를 가리켜 “세상을 뒤흔들 혁신 기술”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날 강정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팀도 저농도 질산염 수용액으로부터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고효율 저가 촉매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가격이 기존 귀금속 촉매보다 수천분의 1에 불과해 비료, 플라스틱, 의약품, 선박용 연료, 수소 운반체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다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 연구팀도 담수화 공정 후 폐기되는 농축수에서 담수와 고순도 리튬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같은 산학연의 기후위기 대응 기술은 올해부터 유럽연합(EU)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철강·비료·알루미늄·시멘트 등을 대상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탄소국경세) 시범 적용에 나서기로 하면서 더욱 절실해졌다. 오 차관은 “아직은 우리가 2050년 탄소 중립 과제와 탄소국경세 대처 등 종합적으로 볼 때 갈 길이 멀다”며 “실험실의 탄소 중립 기술을 산업 현장에 유기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에너지기술연구원·생기원·화학연구연·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기술지원단’을 만들고 ‘탄소중립 중점연구실’ 지정 등 인력양성에 나서기로 했다. 과기정통부는 2030년까지 국산 기술로 그린수소 생산을 하기 위해 10㎿급 수전해 생산기술을 개발한다는 게 포부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가 기후위기 기술 연구개발(R&D) 측면에서 뒤져 있다는 평가가 많다. 우리나라(2021년 기준)는 제조업 중 에너지 다소비 비중(81.8%)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2%)보다 크게 높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8.3%)은 영국(41.9%), 중국(21.5%), 미국(21.1%) 등에 비해 크게 낮다. 유 고문은 “우리의 기후위기 대응 기술이 추격형이 많은 상황에서 유럽·일본·미국은 끊임없이 투자해왔다”며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불황을 겪으며 기후위기 기술에 대해 우리가 해외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진 듯하다”고 우려했다.
해외에서는 CCUS 등 다방면으로 기후위기 대응 R&D가 고도화되고 있다. 석유업계가 원유 채굴시 지층의 압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비해 이산화탄소를 주입·저장(CCS)해 원유 채굴을 원활히 하는 기술을 쓴 것은 오래됐다. 스위스의 클라임웍스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 저장하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의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인 엑스프라이즈가 2021년부터 4년간 ‘최고의 탄소 포집 기술’ 개발자들에게 상금 1억 달러를 분배하겠다고 한 것도 CCUS 기술의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CCUS는 탄소 포집 설비 가동에 많은 에너지가 들고 탄소를 저장·격리하는 기술도 아직 충분치 않다. 이로 인해 탄소를 재활용하는 기술(CCU)도 활발하게 개발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의류 등 섬유 폐기물이나 리튬이온 배터리 등을 재활용하는 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탄소를 흡수하는 콘크리트 기술도 눈에 띈다. 심지어 태양에너지를 일부 반사해 기후위기를 막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일종의 태양지구공학이다. 실용화까지는 첩첩산중이지만 해염(海鹽·바닷물로 만든 소금)이 포함된 인공 구름을 만들거나 새털구름을 옅게 만들어 열이 빠져나가도록 하는 접근법이 나온다. 우주에 반사판 등을 배치해 태양에너지 유입을 줄이거나 지상 20여㎞ 성층권에 탄산칼슘 등을 분사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이우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겸 과총 회장은 “국제사회가 프레온 가스 규제에 나서면서 심각하게 훼손됐던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지 않느냐”며 “기후위기와 탄소 무역장벽에 대처하기 위해 탄소중립 기술 R&D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