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인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은 어느 날 전철역에 실린 한 법무법인의 광고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광고판에는 ‘아동성추행, 강간 범죄, 기타 성범죄’ 등에 대한 ‘부당한 처벌을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로 이끕니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한 성범죄 자문업체는 감형에 도움이 되는 반성문 2부, 탄원서 2부, 근절서약서 1부, 심리교육수료증, 상담사 의견서, 소감문 등을 패키지로 묶어 55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김 소장의 신간 ‘시장으로 간 성폭력’은 성범죄 가해자 전담 변호사·법무법인, 가해자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감형을 위한 컨설팅 및 반성문 대필 업체 등 각종 지원산업을 파헤친다. 이미 성폭력 가해자 변호가 시장성을 인정받는 현실이다. 일부는 고위 인사를 자문위원으로 임명하고 월 홍보비를 1억원 이상 쓰는 등 네트워크와 자본을 축적 중이다.
책은 성폭력 피해자와 여성단체 활동가, 변호사 등을 심층 인터뷰하고 현장을 취재하며 가해자 지원산업이 성폭력 판례를 오염시키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피해자에게 충분히 주체성이 있으면서 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는지,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으면서 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지를 추궁하게 한다. 재판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이른바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도 여전하다. 2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