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위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중국의 CATL이 완성차 업체 포드와 손잡고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한다.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규정을 담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우회하는 방식의 투자다. IRA를 계기로 대(對)미 투자를 가속화하며 배터리 시장의 패권 잡기를 노리던 국내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중국 업체들의 북미 진출을 촉진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2일(현지 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양 사가 35억 달러(약 4조 4000억 원)를 투자해 미시간주 남서부 마셜에 배터리 공장을 세울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건설 계획은 이번 주 내로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최소 25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드와 CATL은 지난해부터 합작공장 설립을 협의해왔다. 포드는 전기차 생산량을 2021년 2만 대에서 2026년 200만 대로 늘리기로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배터리 회사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블룸버그는 포드 관계자를 인용해 “CATL 기술에 기반한 포드 차량용 배터리 생산을 검토하고 있으며 북미 지역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작공장은 CATL 기술을 사용해 배터리를 생산하되 공장 시설은 포드가 100% 소유할 것으로 알려졌다.
포드와 CATL의 협력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IRA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산 원자재와 소재를 배제하기 위해 IRA에 전기차 보조금을 받는 요건으로 배터리 조달 국가를 한정하는 조건을 담았다. 광물의 경우 북미 지역이나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채굴·가공해 사용한 비율을 내년 40% 이상으로 맞춰야 하고 2027년에는 80%에 도달해야 한다. 부품은 내년부터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50% 이상 사용해야 하며 2029년에는 100%로 맞춰야 한다.
북미 지역에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로서는 이번 IRA가 대규모 보조금을 수령해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이 무색하게 포드는 CATL 기술을 이용해 배터리를 생산하되 지분은 직접 100% 소유·운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CATL에 점점 밀리며 반등의 기회가 절실하기도 하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SK온·삼성SDI(006400)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3.7%로 전년(30.2%) 대비 6.5%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CATL을 필두로 한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2021년 48.2%에서 지난해 60.4%로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IRA의 세부 규정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포드와 CATL의 합작공장이 어떤 혜택을 받을지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향후에도 중국이 공식적인 지분을 보유하지 않으며 기술만 제공하는 형태로 북미 진출을 시도할 수 있어 위기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포드가 저가형 배터리 탑재를 늘리는 점도 국내 업체들에 위협 요소다. CATL이 내세우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국내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하이니켈 배터리에 비해 주행거리가 짧지만 가격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포드가 CATL과 세울 합작공장에서도 LFP 배터리를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포드는 지난해 CATL에서 LFP 배터리를 조달해 ‘머스탱 마하 E’와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포드는 전기차 사업 확대를 위해 CATL뿐 아니라 한국 기업과도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포드는 현재 SK온과 합작사 ‘블루오벌SK’를 설립하고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각각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LG엔솔과는 튀르키예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