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돈·명예는 모래성… 나눔의 탑은 무너지지 않죠"

이선구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사장

'사랑의빨간밥차'로 14년 무료 급식

사스·코로나 사태에도 멈추지 않아

阿 등에 생필품·이약품·쌀 제공도

나 아닌 남 위해 구걸하는 건 성자

이동급식차량에 제도적 지원 필요

이선구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사장이 14년 째 운영하고 있는 무료 급식 차량 '사랑의빨간밥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선구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사장이 14년 째 운영하고 있는 무료 급식 차량 '사랑의빨간밥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돈과 명예로 쌓은 탑은 파도가 밀려오면 없어지는 모래성과 같아요. 있을 때는 누구도 부럽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먼지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나눔으로 쌓은 성은 다릅니다. 아무리 힘들고 험한 일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죠.”



16년째 무료 급식 차량 ‘사랑의빨간밥차’를 이끌어 ‘노숙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선구 사단법인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사장은 인천 장기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죽는 그날까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가 노숙자와 빈곤층을 위해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를 설립한 것은 2007년. 초창기 활동은 기업이나 단체, 정치인 등으로부터 기부를 받은 쌀을 단순히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2년 후부터는 무료 급식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 이사장은 “쌀을 지원해줘도 밥을 지을 수 없는 노숙인들로부터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나 햇반을 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며 “무료 급식 사업인 사랑의빨간밥차를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밥차는 지난 14년 간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물론 코로나19 때도 다른 급식소나 밥차는 활동을 중단했지만 빨간밥차가 항상 원래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자체가 운영하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노숙인들이 밥을 굶어서는 안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노숙자나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코로나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먹지 못하는 것”이라며 “우리까지 나오지 않으면 이들은 밥을 먹을 곳이 없다. 내가 죽을 때까지 밥차가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밥차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외 극빈가정이나 차상위계층에게 쌀과 생필품, 의약품 등을 지원하는 사업(지구촌사랑의쌀독사업)도 벌인다. 이미 국내에 98개, 해외에 49개 지부가 설치돼 운영 중이다. 이 이사장은 “목표는 국내 각 시·도·군에 1004개, 해외 100개국에 지부를 만든다는 것”이라며 “아프리카의 기아와 질병 문제 해소에 도움을 주기 위해 55개국에 빵 공장을 세우고 이동 병원 수준의 왕진 가방도 2000개 정도 보낼 생각”이라고 전했다.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는 영리 단체가 아니다. 밥차를 끌고 지구촌 취약 계층을 지원하려면 누군가의 지원을 끌어내야 한다. 오롯이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자신을 ‘앵벌이꾼’으로 지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가 작성한 한 달 일정표는 빼곡하게 차 있다. 이 이사장은 “지원을 받기 위해 매일 새벽 6시 30분부터 국제적인 ‘앵벌이’에 나선다"며 "나를 위해 구걸하는 것은 걸인이지만 남을 위해 구걸하는 것은 성자라고 생각하기에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선구 이사장이선구 이사장


이사장은 한때 잘 나가는 건설업자였다. 서울 마포 가든호텔, 강남 팔레스호텔 등을 지으면서 유명세를 탔고 ‘준(準)재벌’로 불렸다.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회사는 부도의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고 집을 비롯한 모든 재산은 압류 당했다. 이 이사장은 “돈도 잃고 명예도 잃자 사람들이 돌아서기 시작하더라”며 “너무 힘들어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 그의 눈에 띈 책 한 권이 삶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짐 정리 중 우연히 발견한 경주 최부자 관련 서적이었다. 최부자집이 쌀독을 마련해 주위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는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이런 애기를 몰랐다면 내가 나눔의 길로 들어서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나중에는 경주 최부자상을 만들어 5년 간 시상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이동급식차량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간청하고 다닌다. 실내에서 먹는 무료 급식의 경우 1인 당 3,200원의 지원금이 나오지만 밥차에는 단돈 1원도 없다.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사회복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기는 했지만 2년 째 감감무소식이다. 이 이사장은 “취약계층에 대한 무료급식도 이제 시대에 맞출 필요가 있다”며 “21대 국회가 끝나 자동 폐기되기 전에 이뤄지길 바란다”고 간청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