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부터 RNA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도전에 나섰는데 우리 연구실을 포함한 학계가 목표의 70% 정도를 달성한 것 같아요. 연구에 더욱 매진해 코로나 바이러스는 물론 암과 유전병 같은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기여하려고 합니다.”
김빛내리(54·사진)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은 22일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리보핵산(RNA) 치료제가 전 세계 제약업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2020년 RNA 분석기법으로 코로나19 유전자 지도를 세계 최초로 완성해 주목받았던 김 단장 연구팀은 이번에 또다시 RNA 연구 논문 2편을 23일 발간되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동시에 발표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 단장은 “이번 연구가 RNA 치료제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BS에 따르면 연구팀은 마이크로RNA(miRNA)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 과정에 필요한 물질인 ‘다이서’의 작동 원리를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생명활동은 세포 안의 특정 유전자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유전자 발현 조절’을 통해 이뤄진다. RNA는 이런 유전자 발현 조절을 하는 물질이며 miRNA는 RNA를 이루는 나노미터(nm·1억분의 1미터) 단위의 작은 물질이다. miRNA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알아야 인간이 유전병 치료를 위해 원하는 RNA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게 김 단장의 설명이다. miRNA는 ‘miRNA 전구체’라는 더 큰 덩어리가 다이서라는 일종의 절단기에 의해 잘게 잘리면서 만들어지는데, 이 절단 과정과 절단기의 구조를 실험을 통해 면밀히 밝혀낸 게 이번 성과다. 이런 내용은 이미 2003년 연구팀이 가설로도 제시해 ‘네이처’에 실린 바 있다.
김 단장이 본격적으로 miRNA 연구에 나선 것은 2001년부터다. 그가 32세의 나이에 교수 생활을 시작한 해이자 국제 학술지 ‘셀’을 통해 인간의 miRNA가 처음으로 알려진 해다. 김 단장은 “당시만 해도 miRNA가 발견은 됐는데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며 “파헤쳐 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miRNA 연구로 ‘키 크는 유전자’를 밝혀내는 등 22년 동안 3대 학술지(네이처·셀·사이언스)에 논문 20여편을 발표했다. 매년 한 건씩 굵직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셀에 실린 코로나19 유전자 지도 논문 역시 치료제와 백신 개발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지만 정작 김 단장은 “RNA를 분석하는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보니 부수적으로 거둔 성과일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김 단장은 코로나 엔데믹으로 백신 개발의 필요성이 줄어든 지금이 오히려 RNA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 늘어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RNA로 만든 코로나19 백신(화이자·모더나 백신)이 수억 명에게 쓰이고도 부작용이 드문 것이 확인되면서 다양한 RNA 치료제의 임상시험의 허들이 낮아졌다”며 “덩달아 글로벌 제약업체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역시 주기적인 감염병 출현을 대비해 RNA 백신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지만 감염병을 넘어 암 백신 개발 등 장기적인 지원을 위한 논의가 보다 활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단장은 RNA에 대한 선도적인 연구로 여성 최초로 서울대 석좌교수에 올랐고, 한국인 최초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 됐다. 아울러 과학분야 노벨상 후보로도 늘 거론된다. 이에 대해 그는 “노벨상보다는 성장하는 과학자가 되자는 생각으로 퇴임하는 날까지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할 것”이라고 했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국내 과학자의 저변이 넓어져야 합니다. 피라미드 저변이 넓어야 높이 쌓을 수 있는 것과 같죠. 과거에는 잘하는 사람만 집중해서 키우는 엘리트주의 방식으로 과학자를 육성했는데, 이제는 숫자를 늘려 서로 선의의 경쟁과 협동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