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애국행사’에 나와 구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던 우크라이나 자매가 사실은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어머니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2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키이우 인디펜던트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2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축구경기장에서 ‘조국 수호자들에게 영광을’이라는 이름으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앞두고 열린 이 행사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연설했고 관람객 수만명이 몰렸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우크라이나 소녀 안나 나우멘코(15)가 자신을 구해준 러시아 병사 유리 가가린에게 감사를 표하는 장면이었다. 가가린은 지난해 러시아가 점령한 남부 해안도시 마리우폴에서 어린이 367명을 구출했다고 소개됐다.
동생의 손을 잡고 무대에 나우멘코는 그를 올려다보며 “유리야 삼촌, 마리우폴에서 내 동생과 아이들 수백명을 구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자매의 어머니는 지난해 4월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공습 당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마리우폴에 머물던 나우멘코의 가족은 러시아군의 공습을 피해 건물 지하실을 전전하며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고, 나우멘코의 어머니는 잠시 외출했다가 포격에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마리우폴 주민들은 러시아 애국 콘서트에 나온 나우멘코의 얼굴을 알아보고 충격에 빠졌다. 특히 자매가 러시아 군인을 포옹하는 장면에서 큰 분노를 느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러시아 애국 콘서트에 동원된 아이는 나우멘코 뿐이 아니었다.
한 주민은 가디언을 통해 “콘서트에 마리우폴에 살던 아이 코스티아도 보였다. 코스티아의 부모는 친러시아 성향이 아니었다”라며 “러시아가 아이들을 금전적인 동기나 다른 이유로 쇼에 내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된 코스티아 부모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마리우폴을 점령하기 위해 도시가 초토화될 때까지 폭격을 퍼부었다. 당시 마리우폴 당국은 민간인이 피해 있는 해당 극장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러시아군에 요청했고,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극장 건물 외부에 러시아어로 ‘어린이들(дети)’이라고 크게 적어놓았지만 러시아군은 이를 무시하고 폭격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콘서트에서 “러시아 장병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영웅적으로, 용기있게,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라며 “우리의 역사적 영토, 우리의 인민을 위한 전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고 짤막한 연설을 했다.
방송으로 이 모습을 지켜본 마리우폴의 주민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역겹다”라고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