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단색화’를 대표하는 거장 박서보(92)의 이름을 딴 첫 번째 미술관이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올 상반기 개관한다.
26일 JW 메리어트 호텔에 따르면 상반기 호텔 개장과 함께 호텔 앞바다 범섬이 마주보이는 위치에 스페인 건축가 페르난도 메니스가 설계한 ‘박서보 미술관’(가칭)이 문을 연다. 박서보의 고향인 경북 예천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박서보미술관’ 건립을 제안했지만 결실을 맺어 정식 개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서보미술관은 JW 메리어트 제주 부지 내 바다와 인접한 진입로에 자리 잡았다. 건축가 메니스는 나지막하고 경사진 형태의 작은 건물이 바다와 섬까지 함께 볼 수 있게 작은 미술관을 설계했다. 자연 풍광까지 감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한국 건축의 ‘차경(借景)’ 기법을 도입한 듯한 구조다. 미술관이 단지 작품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공간에서의 경험, 나아가 지역성과의 조화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박 화백의 확고한 철학이다. 지난해 6월 메니스의 설계안을 본 박 화백은 “그의 건축 작품들을 처음 봤을 때 이 사람이다 싶었다. 우리 둘은 좋은 궁합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JW메리어트 제주는 박화백이 2019년 설립한 비영리재단이자 전시·아카이브 공간인 기지(GIZI)재단과 함께 박서보미술관을 조성을 추진했다. 동시에 린 채드윅, 알렉산더 칼더, 로랑 그라소, 마우리치오 카텔란, 필립 파레노, 데미안 허스트, 다니엘 아샴 등의 작품을 호텔 곳곳에 설치하면서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5월부터는 서대문구 연희동 기지재단 옆에 ‘박서보 기념관’이 착공된다. 연세대 건축학과 최문규 교수의 설계로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박서보의 고향인 경북 예천군이 추진해 온 박서보미술관은 답보 상태다. 박 화백 측은 작은 마을을 살려내는 독창적 건축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건축가 피터 줌터에게 설계를 의뢰하자고 제안했으나, 설계 공모 문제로 제동이 걸렸다.
한편,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에 위치한 화이트 큐브(White Cube) 갤러리에서 25일(현지시간) 박서보 개인전이 개막했다.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화이트 큐브’는 뉴욕·파리·홍콩 지점을 가진 세계 정상급 갤러리 중 하나다. 1970년대 초기 ‘묘법’부터 자연에서 영감 얻은 색채가 담긴 최근작들을 4월1일까지 전시한다.
박서보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안부 전화하지 마라. 내게는 이제 그 시간이 아깝다”라며 “사는 것은 충분했는데,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 그 시간만큼은 알뜰하게 살아보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