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이 원유·천연가스 등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제한한 반대급부를 미국이 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對)유럽 수출이 큰 폭 늘어난 지난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전쟁 장기화가 미국의 글로벌 에너지 지배력 강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 시간)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케이플러를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미국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원유량이 전년 동기 대비 38% 급증했다고 밝혔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의 미국 원유 수입량이 크게 늘었고 스페인의 경우 수입 규모가 88%나 증가했다. 지난해 유럽 국가들의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량도 2배로 커졌다.
전쟁 이후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제한한 가운데 유럽 국가들이 부족분을 미국산으로 대체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부터 EU와 주요 7개국(G7)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를 시행해왔으며 이달부터는 정제 유류 제품 수출도 제재하기로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기존에 EU가 러시아 원유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60%에 달했다. 서방 국가들의 제재에 타격을 받은 1월 러시아 석유·가스 부문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46%나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미국이 에너지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등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최근 몇 달간 유럽으로 수출된 미국 원유량은 같은 기간 페르시아만에서 수송된 규모를 훨씬 웃돌았다. 대유럽 수출 급증에 힘입어 지난해 미국에서 시추된 일평균 원유는 1190만 배럴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은 “미국은 1950년대 이후 세계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지배적인 지위를 되찾았다”며 “현재 미국 에너지는 유럽 에너지 안보 기반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간 증산에 소극적이었던 미국 석유 기업들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생산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WTI와 북해산브렌트유 간 가격 차이가 확대되면 원유 거래 업자들의 미국산 원유 수출에 대한 유인이 커지기 때문이다. WTI와 브랜트유 간 가격 격차는 전쟁 전 3~4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10달러선까지 벌어졌다. 그레고리 브루 유라시아그룹 연구원은 “미국은 보조금을 주면서 친환경에너지 분야를 키우려 하지만 당분간 대규모 석유 생산을 지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