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외비' 스틸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영화 '대외비'는 묘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중간 회색 지대에서 서 있다. 그 경계선에서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권력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은근한 대사와 캐릭터의 행동으로 말하니 여운은 더욱 짙다.
'대외비'(감독 이원태)는 1992년 부산,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과 정치판의 숨은 실세 순태(이성민), 행동파 조폭 필도(김무열)가 대한민국을 뒤흔들 비밀문서를 손에 쥐고 판을 뒤집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범죄 드라마다. 해웅은 소시민 곁에서 함께 호흡하는 국회의원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무난히 공천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판을 흔드는 순태의 다른 선택으로 미끄러진다. 앙심을 품은 해웅은 검은 세력인 필도와 손잡고 권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작품을 끌고 가는 소재는 권력이다.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순태,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해웅, 권력과 손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필도의 모습을 통해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걸 내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의 중심에는 해웅이 있다. 해웅은 극 초반 소탈한 국회의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즉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어둡고 무거워진다. 관객들은 이런 해웅의 고민을 따라가면서 권력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작품의 주제는 '대외비'라는 한국 제목보다 '더 데블스 딜(The Devil's Deal)'이라는 영어 제목에 더 가깝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할 수 있는가?"라는 대사가 순태의 입을 통해 나오는데, 주제 그 자체다. 권력을 차지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 각오가 돼 있어야 된다는 의미. 악마에게 영혼을 팔면, 결국 자신이 악마로 변할 수밖에 없기에 그 대가는 혹독하다. 이 감독은 변해가는 해웅을 통해 권력의 달콤함과 씁쓸함, 아무리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끝내 자신을 갉아먹는 안타까움 등을 전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인물들의 선택에 의해 전개가 흘러간다는 것이다. 하나의 서사나 사건이 작품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각각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음 이야기가 펼쳐진다. 순태가 해웅을 버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벼랑 끝에 몰린 해웅이 필도와 손을 잡으며 전개가 펼쳐진다. 또 검찰을 찾아간 조폭의 선택, 사건을 파헤치려는 기자의 선택, 다음을 향해 나아가려는 해웅과 필도의 발걸음 등이 모여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인물과 관계성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만큼, 캐릭터의 매력은 짙다. 해웅은 평범한 가장에서 권력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순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권력의 숨은 실세' 정도로만 정의될 뿐 나이, 직업, 고향 등은 알려지지 않는다. 한 쪽 다리를 저는데 어떻게 하다가 다리를 다쳤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권력을 쫓다가 다쳤다는 뉘앙스만 풍긴다. 필도도 흥미로운 캐릭터다. 조폭의 우두머리로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캐릭터의 매력은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로 구현된다. 네 번째 호흡을 맞추는 조진웅과 이성민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던 호흡은 과장된 게 아니다.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는 라면집 신에서는 위태로운 긴장이 흐르고, 마지막 결투로 그려지는 국밥집 신은 빈틈없이 숨 막힌다. 김무열은 외형부터 조폭이다. 필도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한 달 만에 15kg을 증량하고, 짧은 스포츠머리로 자른 그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각각의 개성은 살리면서 앙상블을 만든 이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작품을 즐기는 묘미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