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A대형병원에는 100여명의 청소원 등 용역업체(간접고용 형태) 직원들이 근무한다. 이들은 퇴근할 때 병원에서 제공한 근무복을 집으로 들고 돌아가 세탁을 한다. 하지만 이 병원의 의사, 간호사는 모두 병원에 세탁을 맡긴다. 병원은 세탁대형업체를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병원의 노조 관계자는 “(청소원들은) 바닥에 흥건한 피를 닦고 감염환자인지도 모르는 환자 옆에서 청소를 한다”며 “감염균이 있는지 모를 근무복을 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A병원 측은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들도 청소원들의 근무복 세탁을 맡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용역업체 직원을 차별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의료기관 종사자가 개인 세탁을 할 수 없는 제도가 시행된 지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제도가 제대로 안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와 간호사와 달리 청소원은 제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원청(병원)의 하청(용역업체 직원) 차별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9일 노동계에 따르면 A대형병원뿐만 상당수 병원은 의료 종사자 개인 세탁 금지 제도를 의사와 간호사에 국한해 이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8월부터 의료기관세탁물 관리 규칙을 고쳤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의사, 간호사 등 환자와 접촉이 잦은 의료 종사자는 본인이 착용한 근무복을 개인적으로 세탁하지 않는 게 골자다. 작년 1월 1일부터 적용된 이 제도는 위반할 경우 1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도 가능하다.
일부 병원이 청소원 근무복을 의사와 간호사처럼 세탁해주지 않는 이유는 우제도 취지를 현장에서 편의대로 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복지부가 이 제도를 설명하면서 배포한 질의응답자료를 보면 수술실, 중환자실, 응급실 등에서 진료, 간호, 검체채취 등을 직접 수행해 오염이 의심되는 종사자의 근무복이 대상이다. 청소부도 응급실 등 해당 공간에서 일한다는 점을 볼 때 제도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환자의 진료와 처치 등 의료행위를 담당하지 않고 외래 근무자의 근무복은 예외로 뒀다. 병원에서는 외래 공간에서 일하는 청소부가 있다면서 이 해석을 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의료계는 의료 종사자를 의료인으로만 좁혀 판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하청업체 직원인 청소원이 원청인 병원을 상대로 부당한 처우를 받는 상황을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청 노동조합이 없는 병원이 많은데다 노조가 있더라도 원청은 하청노조와 교섭 의무가 없다.
보건의료노조는 해당 관리규칙을 바꿔 병원 청소원도 개인 세탁 금지 혜택을 볼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해당 관리규칙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어떤 대형병원은 간접고용노동자의 근무복 세탁을 해주는 등 병원마다 제도 적용이 제각각인 상황”이라며 “모든 노동자가 감염 위험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인권위 진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