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다음 주 ‘탄소중립산업법’ ‘핵심원자재법’ 초안을 공개하며 친환경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낸다. EU는 미국과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한 ‘구매자 클럽’ 구성을 추진하며 동맹국 간 결속도 강화하고 있다. EU는 신규 프로젝트 허가나 보조금의 지급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여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긍정적이지만 원자재의 중국산 탈피를 추구한다는 점은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8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14일 탄소중립산업법과 핵심원자재법 초안을 각각 공개한다. EU는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친환경 산업을 미국으로 ‘블랙홀’처럼 빨아들이자 이를 저지하고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외신이 입수한 탄소중립법 초안에 따르면 태양광·배터리·신재생수소 등 핵심 분야의 역내 제조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세부 목표가 담겼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탄소 중립 관련 제조 역량을 연간 수요의 최소 40%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법에서 지정한 분야에 대해서는 신규 사업 진행 시 허가에 필요한 기간을 단축하고 EU 회원국이 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보조금 지급 규정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법에는 ‘전략 원자재’ 연간 수요의 10%를 역내에서 채굴하고 가공과 재활용 역량은 각각 40%, 15%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전 세계 원자재 가공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가운데 EU가 자체 원자재 조달 역량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는 EU 회원국 차원의 공동 이행·조율을 위한 ‘핵심원자재위원회’ 신설 계획과 함께 신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신속한 인허가 및 자금 조달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전기차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현재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가 모두 진출해 있다. EU는 신규 사업 인허가나 보조금 지급에서 시간을 오래 끄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앞으로는 신속한 집행이 예상된다. 다만 EU가 결국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는 점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에 불리한 조항이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EU는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주요 7개국(G7)을 중심으로 한 구매자 클럽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0일 백악관에서 만나 이 같은 방안을 의논할 예정이다. 세부적으로 G7 위주로 구성된 구매자 클럽은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의 광물자원국과 협정을 맺을 예정이다. 구매자 클럽이 광물 수출국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 관료들이 광물 수출국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한편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에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수출을 제한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리셰 스레이네마허르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협력부 장관은 의회에 “안보적 필요성으로 특정 반도체 생산 장비에 대한 기존 수출 통제 규정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규제를 여름 전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이나 자국 업체인 ASML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DUV 노광장비 기술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9년부터 ASML이 중국에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이전 세대인 DUV 노광장비에 대해서는 수출을 허용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