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200조 돈줄 막히고 해고통지서 받고…" 스타트업 줄도산 공포 [美 SVB 파산]

■실리콘밸리은행 본사 가보니

정문엔 보안 요원·폐쇄 안내문 뿐

직원 8500여명 졸지에 실업 위기

"옐런·파월은 어디에 있나" 성토

예금보호 못받는 금액 200조 육박

韓 스타트업·VC도 거래많아 당혹

"이번 사태는 시작에 불과" 전망도

10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폐쇄된 가운데 예금 인출을 위해 방문한 고객들이 굳게 닫힌 문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10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폐쇄된 가운데 예금 인출을 위해 방문한 고객들이 굳게 닫힌 문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파이낸셜그룹 본사. 굳게 잠겨 있는 출입문 앞에는 보도 자료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이날로 SVB가 문을 닫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SVB의 자산과 예금 전체를 인수해 13일 월요일부터 예금 업무를 이어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갑작스러운 은행 폐쇄 소식에 고객들과 투자자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본사 출입문 앞을 서성거렸다. 출입문 오른편에는 SVB 각 지점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운영된다는 안내가 쓰여 있지만 이날 은행 폐쇄 지침으로 과거의 일이 됐다.



출근 시간이 지난 시각이었지만 주차장도 썰렁했다. 회사를 오가는 소수의 직원들은 표정이 어둡고 말이 없었다. 상황 수습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출근했다는 설명이다. 평소 직원들이 야외 휴식 공간에 입주한 카페에 모여 삼삼오오 커피챗을 하거나 탁구 등 오락을 즐기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청소 업무를 담당하는 한 직원은 “이미 많은 직원들이 핑크 슬립(Pink Slip·해고 통지서)을 받았다고 들었다”며 “회사에 위치한 카페도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SVB는 특히 주택자금대출 등 창업자들을 위한 상품이 특화돼 있어 한국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도 많이 거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투자회사 관계자는 “SVB에 자금을 넣어둔 한국의 여러 스타트업과 VC도 SVB의 갑작스러운 폐쇄에 당황해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오전 11시께가 되자 출입문이 열렸다. 서류 뭉치를 든 한 남자가 보안요원의 허가하에 출입문에 들어섰다. 허리의 벨트에는 연방정부 공무원증이 걸려 있었다. 한참을 서성거리다 돌아선 한 투자자는 “분명 지난해까지만 해도 SVB파이낸셜은 굉장히 탄탄한 곳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파산 소식에 황망하고 당황스럽다”며 “부디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기를 바란다”고 한탄했다.





SVB파이낸셜은 스타트업을 주 고객으로 삼아 대출·예금·프라이빗뱅킹 업무를 진행하면서 실리콘밸리 내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팬데믹 이후 투자 생태계가 호황을 맞으며 예금 잔액이 2021년 말 기준 1892억 달러(약 250조 원)를 기록해 한 해에만 86% 성장했다. 또 2021년 6월 말 기준 예적금 규모 622억 달러를 기록하며 실리콘밸리 지역 내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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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늘어난 예금 자산을 채권 등 장기로 묶여 있는 자산에 투자했는데 금리 인상으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에 취약한 구조가 됐다. 이 때문에 미 금융 당국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벤처 투자자 데이비드 삭스는 “파월은 어디에 있나? 옐런은 또 어디 있느냐”며 “13일 월요일에 다시 예금 인출 거래가 재개되기 전에 SVB 예금을 상위 4개 은행에 분산 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폐쇄된 가운데 이날 SVB의 모회사인 SVB파이낸셜 본사에서 일부 직원들이 빠져나오고 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10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폐쇄된 가운데 이날 SVB의 모회사인 SVB파이낸셜 본사에서 일부 직원들이 빠져나오고 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SVB의 파산으로 테크 업계의 대규모 해고 바람에 또 한 번 태풍이 불어닥쳤다. SVB의 전체 직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8553명에 달한다. 2020년만 해도 직원 수가 4461명 수준이었으나 팬데믹 기간에 두 배 규모로 성장했다. 이들 중 일부는 남은 은행 업무를 처리하지만 한 달가량이 지나면 실업자 신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SVB의 예금 자산을 관리할 새 주체인 샌타클래라예금보험국립은행(DINBSC)은 이날 SVB 직원들에게 성명을 보내 “45일간의 고용 기간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현재 SVB의 총 예금 자산 1754억 달러(약 232조 원) 가운데 예금보험 한도(25만 달러)를 벗어나는 금액이 86%인 1515억 달러(약 200조 원)에 달한다는 점도 잠재적인 뇌관이다. 경기 침체로 스타트업 자금줄이 말라붙은 상황에서 예금 손실은 스타트업 생존에 치명적이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액셀러레이터인 Y콤비네이터의 개리 탄 최고경영자(CEO)는 “SVB와 거래하는 회사가 3000곳에 달한다”며 “긴급 조사를 실시한 결과 거의 400곳에 달하는 스타트업이 위험에 노출됐고 이 중 100곳 이상은 당장 다음 달 직원들에게 줄 월급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 폐쇄 전날 무사히 돈을 인출한 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대표는 “운이 좋게 예금 잔액을 인출할 수 있었지만 인출하지 못한 이들도 있어 지금 우려가 크다”며 “당장 월급을 주지 못할 위기에 처한 곳들이 급하게 자금 융통을 알아보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스타트업의 줄도산 가능성도 우려된다. 실리콘밸리 대표 VC인 퍼스트마크캐피털의 릭 하이츠만 창업자는 “지난 40년간 스타트업 생태계의 기둥 역할을 했던 SVB가 36시간 안에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며 “이런 상황도 가능한데 진짜 바닥은 이제 시작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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