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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인터넷뱅킹 먹통에 SVB 지점 달려온 고객들 웃게 한 한마디 [정혜진의 Whynot 실리콘밸리]

SVB 팔로알토, 샌드힐로드 지점에

인터넷 먹통 호소하며 고객들 수십명 모여

대기 순번 기다리며 웹사이트 접속 시도

더퍼스트리퍼블릭은 차분히 거래 마감…시간외 주가 16% 상

13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핸오버 애비뉴에 있는 실리콘밸리뱅크(SVB) 지점에서 고객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팔로알토=정혜진 특파원13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핸오버 애비뉴에 있는 실리콘밸리뱅크(SVB) 지점에서 고객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팔로알토=정혜진 특파원




13일(현지 시간) 실리콘밸리뱅크(SVB)의 예금 자산이 거래가 재개된 첫 날 미국 실리콘밸리의 심장인 팔로알토 핸오버가의 SVB 지점. 이십여명의 기업 고객들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 이날 새벽부터 온라인 뱅킹으로 접속을 시도했다가 허탕을 치고 지점을 직접 찾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밖에서 안내를 맡은 직원으로부터 예금 인출 서류와 계좌 폐쇄 서류 두 가지를 받아들었다. 대부분 한 손에는 서류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쥔 채 상황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직원 80여명의 스타트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한 창업자는 "새벽부터 온라인 뱅킹에 접속했지만 두 번째 인증 단계부터 먹통이 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지 않았다"며 "마음이 급해서 직원 두 명을 다른 SVB 지점으로 보내 대기줄이 빠른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 말을 마치자 대기줄에 서있던 다른 고객들도 “비슷하게 2단계에서 인증이 안 넘어가 지점에 오게 됐다”며 “눈 앞에서 확인하는 게 안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긴장이 역력한 표정을 풀어준 건 직원의 한 마디였다. 원래 SVB 본사에 근무하고 있으나 전날 급히 은행을 닫는 업무에 투입됐다는 한 직원은 고객들이 빠른 발걸음으로 대기열에 합류할 때마다 "당신의 모든 예금 자산은 안전할 것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저희가 처리해드릴 예정입니다"라고 전했다. 이에 고객들의 긴장된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고객들은 직원에게 "긴 주말을 보냈겠다"며 위로를 건넸다. 이에 직원이 "주말 오전 6시에 지점 업무에 투입 연락을 받은 뒤로 잠을 거의 못 잤다"고 대답하자 모두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어 무사히 예금을 인출한 고객이 나오면서 대기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굿 럭(행운을 빈다)"며 인사하자 다들 이에 화답했다.

13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드힐로드에 있는 실리콘밸리뱅크(SVB) 지점에서 고객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대기하는 가운데 직원이 나와 대기번호를 호명하고 있다. /샌드힐로드=정혜진 특파원13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드힐로드에 있는 실리콘밸리뱅크(SVB) 지점에서 고객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대기하는 가운데 직원이 나와 대기번호를 호명하고 있다. /샌드힐로드=정혜진 특파원




다음 행선지로 기자가 찾은 곳은 실리콘밸리 대표 벤처캐피털(VC)인 세콰이어캐피털을 비롯해 많은 VC 본사가 모여 있는 샌드힐로드의 SVB 지점. 대기 인파는 더욱 많았다. 혹시나 모를 돌발 상황을 대비해 보안요원 세 명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출입구 계단으로 쓰이는 곳에서 각자 노트북을 꺼내 웹사이트로 접속을 시도하며 대기하는 인파가 삼십명에 달했다. 고객 업무가 처리될 때마다 나이가 지긋한 직원이 직접 나와 밖에서 대기 번호를 호명했다. 오후 2시께가 되자 68번이 불렸다. 이날 무사히 예금을 찾은 헤더 린드씨는 "15일까지 직원 월급이 나가야 하는데 급한 불을 끄게 됐다"며 "일단은 당장 필요한 여유자금만 인출했고 나머지는 인터넷 뱅킹이 정상화되면 추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십여명의 고객들은 인출 업무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기 번호가 80번이라는 한 고객은 “지점이 3시까지만 여는데 내 순번까지는 차례가 오지 않았다”며 “일단 웹사이트로 계속해서 인출 시도를 해야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13일(현지 시간) 팔로알토 캘리포니아 애비뉴에 있는 더퍼스트리퍼블릭은행 지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팔로알토=정혜진 특파원13일(현지 시간) 팔로알토 캘리포니아 애비뉴에 있는 더퍼스트리퍼블릭은행 지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팔로알토=정혜진 특파원


대체적으로 정부가 예금 자산 전액 보호하기로 한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실리콘밸리 한국계 창업자 커뮤니티인 82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김광록 프라이머사제 공동 대표는 "주말 사이만 해도 일부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월급 지급과 대금 결제 등을 걱정하며 한두달 이상 못 버틸 수 있다고 각오를 했다"며 "자칫 SVB 파산처럼 스타트업도 예금을 갖고도 유동성이 없어 파산하는 상황이 나올 뻔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실리콘밸리 산업 전체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데미지를 입을 상황으로 발전할 뻔했는데 구사일생이 됐다"고 짚었다.

앞서 SVB 파산 여파를 가장 크게 받게 될 은행으로 지목됐던 더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이날 주가가 61% 떨어진 채 장을 마감했다. 주말 동안 개장 전 매도세가 크게 이어진 탓이다. 하지만 막상 은행이 문을 열자 우려헀던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팔로알토 캘리포니아 애비뉴에 있는 더퍼스트리퍼블릭은행 지점은 객장에 고객이 여섯명 가량 있었다. 객장의 직원은 지점을 찾은 고객들을 안심시켰다. 이날 예금 인출을 하지 않고 객장을 나온 안젤라 위씨는 "원래 주변에서 더퍼스트리퍼블릭도 위험하다고 들어서 오늘 문의를 하러 왔다"며 "직원 안내도 듣고 상황도 파악하고 나니 한 시름 놓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더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16% 상승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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