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동향

美'SVB' 발빠른 대응에 한숨 돌렸지만…'레고랜드'사태 재발시 '아찔'

◆예금보증·기금조성 긴급조치…스타트업 줄도산 차단

SVB 파산 이틀만에 신속 조치

회사채 등 잇단 정책실기와 대조

"美 전방위 대책서 배워야" 지적





13일 국내 금융시장은 우려했던 ‘검은 월요일’을 피했다.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0.67%, 0.04% 올랐고 원·달러 환율도 22.4원 내린 1301.8원에 마감했다. 자산 규모 2090억 달러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갑작스러운 붕괴가 오히려 미 통화 당국이 베이비스텝(0.25%포인트 금리 인상)으로 긴축 스탠스를 누그러뜨릴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덕분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전광석화 같은 정책 대응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12일(현지 시간) 곧바로 공동 성명을 통해 “SVB와 (이날 폐쇄된) 시그니처은행에 고객이 예금한 돈은 전액 보증하겠다”고 밝혔다. 10일 SVB가 파산한 후 이틀 사이에 대책을 마련해 아시아 증시 개장 전에 발표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차단한 것이다.



이와 별도로 연준은 새로운 기금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사가 보유한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담보로 이들 금융사에 1년간 자금을 대출해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해도 고객에게 예금을 원활하게 되돌려줄 수 있게 했다. 특히 금융사가 보유한 채권의 현재가치가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크게 하락한 가운데 현재가치가 아닌 액면가치를 기준으로 담보를 인정해주는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회사채 시장 경색, 흥국생명의 영구채 콜옵션 연기 사태 등에서 보여줬던 우리 당국의 잇따른 정책 실기와는 확연히 대조된다. 이종훈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혁신 생태계 보호를 위해 전방위 대책을 내놓은 미 정부의 행보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SVB 파산의 요인, 사태 진행 추이 등을 면밀히 점검하라”며 발 빠른 대응을 지시했다. 116조 원(2022년 3분기 기준)에 이르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1749조 원(2022년 말 기준)의 가계부채 등이 잠재적인 폭탄으로 꼽힌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는 국내의 부실 PF와 관련한 종합대책을 내놓고 시장 불확실성을 사전에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초긴축 폭탄' 韓도 안전지대 아냐…"美처럼 정책 대응력 키워야"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상황이 표시돼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도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0.67% 오른 2410.60에 거래를 마쳤고, 원·달러 환율은 22.4원 내린 1301.8원에 마감했다. 연합뉴스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상황이 표시돼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도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0.67% 오른 2410.60에 거래를 마쳤고, 원·달러 환율은 22.4원 내린 1301.8원에 마감했다. 연합뉴스


국내 금융시장이 우려했던 것보다 큰 동요 없이 안정적 모습으로 마무리되자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인 빠른 정책 대응을 호평했다. 외생변수에 취약한 우리 입장에서는 SVB와 같은 돌발 변수에 시장 불안감이 커질 수 있었지만 한 시름 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나서서 시장의 약한 고리가 터지지 않도록 시장의 불안을 달래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정부가 시장에 대한 모니터링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잠재 폭탄으로 꼽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가계부채, 가상화폐 등의 시장에서 선제 정책 대응을 주문했다. 김창규 다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핀테크가 발달한 현 시점에서 뱅크런이 하나 터지면 번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곧바로 SVB 예금을 전액 지급 보증하도록 해 위기의 불씨를 빨리 제거한 것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일단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전방위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장(전 금융위원장)은 “고금리 장기화로 SVB 파산이 불거졌지만 대형 은행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식의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며 “그래서 초장에 위기를 확실히 잡는 게 중요한데 미국 정부의 정책 판단이 좋았다”고 진단했다.

전 원장은 그러면서 “SVB 사태가 우리에게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가 불쑥 튀어나올 가능성에 (정부가) 항시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부동산 PF 문제뿐만 아니라 한계기업의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차입 비중이 큰 스타트업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며 "이런 우리 경제의 약점과 강하게 연결된 저축은행·지방은행 등 재무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금융기관에서 탈이 날 수 있는 만큼 당국이 철저하게 모니터링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짚었다.

혁신 생태계 붕괴 우려 커지자
美, 빠른 개입으로 위기전이 막아


아직 안심하기보다는 경계의 날을 바짝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이번에는 벤처 생태계가 미국의 핵심 성장동력이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빠른 지원에 나섰지만 가상화폐 전문 특수은행들이 파산과 부도가 났을 때 똑같이 연준이 지원해줄지는 회의적”이라며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게 정책 당국의 판단 미스다. 지난해 레고랜드발(發) 자금시장 경색, 흥국생명의 영구채 콜옵션 연기 사태 등은 정부가 ‘뒷북 대응’으로 위기를 키운 사례들이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결국 부동산 가격 안정으로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와 부동산 PF를 연착륙해야 한다”며 “이들 대출의 부실화가 또다시 불거져 증권회사들이 흔들릴 경우 레고랜드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국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한계기업 부담↑
약한 고리 저축銀 등 면밀 관리를


SVB 사태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을 둘러싼 압박은 줄었지만 외환시장의 급격한 쏠림은 여전하다. 이날도 원·달러 환율은 전날 대비 22.4원이나 빠졌다. 이달에 미 통화 당국이 베이비스텝(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으로 환율이 하락했지만 외환시장은 미국 움직임에 따라 롤러코스터 장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현재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시장 역시 금리와 환율을 두고 악재와 호재가 뒤섞여 혼란스럽다”며 “유언비어 하나에도 시장 전체가 뒤집힐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시장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도 이날 수출투자책임관회의를 통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금융·외환시장에 대한 모니터링, 실물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 최소화 등을 대책으로 내놨지만 2% 부족하다는 평가다. 벤처시장에서는 SVB 폐쇄로 이 은행에 자금이 묶인 국내 기업과 벤처캐피털 등에 대한 대책 등 손에 잡히는 실질적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전직 국책연구기관장은 “경기 부진으로 우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도 위축된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로 관련 기업이 자금 경색과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VB 파산에 놀란 당국…은행 '몰빵대출 규제' 유지


금융 당국이 은행에 대한 거액 익스포저(위험노출액) 한도 규제를 내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채권시장 불안에 따라 지난해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금융권의 유동성 규제 완화 조치도 연장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바젤 기준에 따라 단일한 거래 상대방에 대한 익스포저를 기본 자본의 25% 이내로 관리하도록 하는 거액 익스포저 한도 관리 기준을 내년 3월 말까지 1년 연장하는 행정지도를 최근 예고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바젤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거래 상대방의 부도로 은행이 대규모 손실을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거액 익스포저 규제를 운영하되 1년간 연장 적용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액 익스포저 규제는 특정 기업에 대출이 편중됐다가 부도가 나서 은행의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익스포저에는 대출 등 자금 지원 성격의 신용공여와 주식·채권 등 금융 상품, 보증 제공자의 보증 금액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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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금융 당국은 지난해 10월 회사채, 단기 금융시장 경색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뿐 아니라 보험, 저축은행, 여신 전문 금융, 금융투자에 대해 유동성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한 조치를 연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유동성 규제 완화 조치에는 은행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정상화 유예, 예대율 한시적 완화, 보험 퇴직연금 차입 한도 한시적 완화 등이 포함됐다.


세종=송종호 기자·세종=우영탁 기자·세종=곽윤아 기자·세종=이준형 기자·이태규 기자·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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