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도연을 수식하는 단어는 많다. '칸의 여왕', '여배우들의 귀감',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배우'까지 화려하다. 그중 전도연이 오랜만에 꺼낸 수식어는 '로코퀸'이다. '일타 스캔들'을 통해 17년 만에 로맨틱 코미디를 만난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극본 양희승/연출 유제원)은 사교육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국가대표 반찬가게 열혈 사장 남행선(전도연)과 대한민국 수학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의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다. 남행선은 언니가 남기고 간 조카 남해이(노윤서)를 친딸처럼 키우고, 몸이 불편한 남동생을 돌보고 있다. 때문에 국가대표로까지 활약했던 핸드볼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생계에 뛰어든다. 식당을 했던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솜씨를 살려 사교육의 메카에서 반찬가게를 연 남행선. 그곳에서 최치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전도연은 처음 '일타 스캔들'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수락하지 못했다. 오지랖 부리는 캐릭터를 호감 있게 그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양 작가의 "비현실적이고 판타지가 있는 로맨슨데 현실적인 이야기도 있지 않냐. 그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진짜처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말에 설득됐다. 그는 "누구나 다 삶을 열심히 사는데, 그것에 대해 공감받고 싶지 않냐. 행선이 응원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수락했다"고 말했다.
전도연의 우려처럼, 남행선은 표현하기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남행선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할 정도로 희생정신이 강하다. 또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해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 오지랖을 부리는 캐릭터는 민폐 캐릭터로 비추기 십상이다.
"행선의 행동이 시청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행선을 이해시킬까, 민폐가 아닌 열심히 사는 삶의 방식으로 행선을 받아줄까 고민했어요."
"초반에 작가님이 생각한 행선은 더 억척스러운 아줌마였어요. 그런데 저 자체가 그렇지 못해서 버겁고 힘들더라고요. 행선의 사랑스러움은 저로 인해 변질된 거예요. 작가님이 '더 좋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행선이 더 친근감 있게 보이지 않았을까요?"(웃음)
'프라하의 연인' 이후 17년 만에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만난 것도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로코퀸'으로 활약하던 전도연은 최근 다수의 장르물에 출연에 깊은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다시 로맨틱 코미디로 돌아온 그의 환한 얼굴은 시청자들의 반가움을 사기 충분했다.
"주변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보고 싶었던 제 모습이였죠. 주변 반응이 좋아서 더 행복했어요. 또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을 해서 좋아요.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행선으로 살면서 굉장히 행복했어요. 촬영을 하는 내내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덩달아 저도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이런 걸 촬영 중간에 느끼는 게 쉽지 않아요. 저한테는 처음 있는 일이고요. 연기가 아닌, 제 진짜 웃음이 나온 적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행선에게 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모성애다. 조카인 해이를 딸처럼 키운다. 낳지는 않았지만, 모성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전도연은 아이를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하며 행선이 해이를 훌륭하게 키웠다는 부분을 존중했다.
"행선이 해이를 많이 존중해 주잖아요. 해이가 학원 다니고 싶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보면 무관심해 보일 수 있어요. 저는 그만큼 아이를 믿은 거라고 생각해요. 요구했을 때 해줄 수 있는 거야말로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행선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거예요."
"저도 아이를 키울 때 행선과 비슷해요. 결국 사람은 자기 의지로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건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아이가 잘하진 못해도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됐다 싶어요. 최선을 다했다고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하고요. 제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이도 잘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일타 스캔들'은 최고 시청률 17%(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기준)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했다. 작품을 이끌고 가는 배우로 흥행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던 전도연은 응원을 받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갈증이 해소된 순간이다.
"흥행에 대한 부담과 갈증은 엄청 있었죠. 물론 흥행이 저를 어떻게 하지는 못해요. 흥행이 안 됐다고 해서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일타 스캔들'이 이렇게까지 큰 사랑과 관심을 받으니 좋더라고요. 저희 팀은 굉장히 소박해요. 관심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에요."
1990년 CF로 데뷔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전도연. 존재만으로 후배 여배우들에게 의지가 되는 그다. 전폭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제 행보가 여배우들에게 비전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된 모습보다, 되기 위한 제 노력을 이 친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된 모습들은 그 친구들이 존경할 만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되는 건 없어요. 저는 굉장히 완벽주의자예요. 그렇게 되기 위해 현장에서 많은 것들을 하고 있어요. 이 모습들을 친구들이 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