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택 시장의 침체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건설사들이 해외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완화로 수요가 증가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공급이 줄어들며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막대한 규모의 발주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내전으로 발주 자체가 멈췄던 리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서의 수주 성과도 나타나고 있어 국내 건설사들은 해외 시장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16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액은 52억 달러로 집계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동에서의 수주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점이다. 현재 중동에서의 수주는 12억 4354만 달러로 전년 동기(5419만 달러)의 약 23배에 달한다.
이는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중동 국가들과 국영 석유 기업의 재정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신동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021~2022년 유가 상승으로 중동 사업주의 재정 여력이 확대됨에 따라 올해와 내년에 걸쳐 대규모 플랜트 및 인프라 프로젝트의 발주가 증가할 것”이라며 “사우디의 아람코가 2030년까지 자푸라 가스전 확장에 총 1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인 데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등에서도 지속적인 천연가스 시설에 대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 연구원은 “화공 플랜트 외에도 사우디의 네옴 프로젝트와 국영 부동산 개발 업체인 ROSHN의 국민주택 사업, 제다 센트럴 프로젝트 등 총사업 규모 7174억 달러의 프로젝트들이 준비돼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건설경영협회는 이 같은 추세에 힘입어 올해 국내 건설사의 해외 건설 수주액이 363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 수주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현대건설(000720)이다. 올해 5조 7000억 원의 해외 수주 목표액을 세운 현대건설은 현재 삼성물산(028260)과 공동으로 사우디 네옴 프로젝트 중 더 라인 러닝터널 공사를 수주해 현재 진행하고 있으며 네옴 옥사곤 항만 공사에 입찰하는 등 네옴과 관련해서만 8개 프로젝트에 추가 입찰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은 사우디 아미랄 석유화학단지 프로젝트와 인산염 석유화학 플랜트 등을 포함해 이라크와 베트남·필리핀 등에서의 수주도 기대되고 있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라크 교통부가 바그다드 고가 열차 프로젝트의 기본 설계와 노선 선정을 마무리했는데 현대건설이 이미 2020년 이라크 정부와 이 사업에 대한 의향각서를 체결해 최종 계약만 남겨둔 상태”라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시장도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대우건설(047040)의 리비아 재진출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달 초 대우건설은 리비아전력청과 7억 9000만 달러 규모의 멜리타 및 미수라타 패스트트랙 발전 공사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2010년 이후 리비아에서의 첫 수주였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수주보다 중요한 점은 북아프리카 거점 국가의 전후 재건 사업의 포석을 다졌다는 것”이라며 “리비아는 내전으로 도로와 항만·발전소 같은 기간시설을 비롯해 원유 생산을 위한 필수 시설이 손상되거나 노후화된 만큼 재건 공사에서 추가 발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이라크 알포 신항만의 후속 사업과 나이지리아 등에서의 추가 수주도 전망되는 상태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올해 해외 수주 목표액이 1조 8000억 원이었는데 나이지리아의 카두나 정유 시설 긴급 보수 공사와 이번 리비아에서의 수주로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며 “이라크 등 거점 시장에서의 추가 사업 수주도 기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GS건설(006360)도 올해 해외 수주 목표액을 5조 원으로 잡고 속도를 내고 있다. GS건설은 베트남에서 나베 신도시 사업과 투티엠 지구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매출 일부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과 싱가포르에서 지하철 공사를 하는 상황에서 그간 공을 들여온 호주 민관합작투자(PPP) 인프라 사업에서의 성과도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