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하원 표결까지 생략하는 강수를 두며 연금 개혁을 관철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국회 모두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개혁 정공법을 피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70년 뒤 보험료를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은 3년 새 31.6%에서 34.2%로 오르는 등 재정 상황은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21일 연금 개혁 방안을 주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회 국회 현안 대토론회에서 이정은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세제분석실장은 “현행 제도(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소진된다”며 “이후 (제도가) 부과 방식으로 전환되면 2093년에는 보험료율을 34.2%까지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기금이 소진돼 당해 연도 보험료 수입만으로 보험료 지출을 모두 감당하기 위해서는 70년 뒤에 보험료율을 34.2%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국회예산정책처의 2020년 전망(31.6%)과 올 1월 보건복지부의 전망(29.7%)보다 높다.
이 실장은 연금 재정을 조속히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15%까지 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매년 0.6%포인트씩 인상해 2034년 15%까지 올리면 기금 소진 시점이 2055년에서 2069년으로 14년 미뤄진다”며 “70년 뒤 누적 적자 규모도 현재 전망보다 3699조 원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학연금 역시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현행 제도(보험료율 18%·1년 지급률 1.7%) 유지 시 사학연금 기금은 2043년 고갈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국회예산정책처가 전망한 기금 소진 시점(2045년)보다 2년 앞당겨진 것이다.
보험료율 인상을 골자로 하는 개혁 요구는 커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그 누구도 논의를 주도하지 않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는 이달 말 연금 개혁안이 아닌 그간 논의 내용을 종합한 경과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한다. 앞서 민간자문위가 보험료율 15% 인상을 권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며 여론 반발이 커지자 개혁안 제출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보험료율 인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이 이달 6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기금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것은 결국 국민 반발 여론에 보험료율 인상이 아닌 기금 수익률 제고라는 우회로를 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연금 전문가는 “보험료율을 낼 경제활동인구가 더 줄어들기 전에 하루빨리 보험료율을 올려 재정 안정에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책임 떠넘기기’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이스란 연금정책국장은 “(연금 재정 지속 가능성을 높일 장치를) 제도로 만들어야 (개혁) 폭탄 돌리기를 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인구구조와 경제 상황 등에 따라 연금 지급액과 보험료율 수준을 조정하는 자동 조정 장치 도입의 필요성을 에둘러 드러냈다. 권문일 국민연금연구원 원장 역시 “재정 전망의 핵심은 앞으로의 재정 수지를 계산해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재정 목표에 대한 개념이 없고 그 목표에 미달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 전망 제도를 고쳐 장기적으로 재정 지속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