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 문제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기본 계획 도출의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김상협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탄소중립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토로했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35.8%(2018년 기준)로 에너지(37.1%) 다음으로 높다. 특히 업종별로 이해관계자 간 의견 차이도 뚜렷해 NDC 목표 수립을 위해 해결해야 할 핵심 현안으로 꼽혔다.
앞서 2021년 10월 문재인 정부는 NDC 초안을 발표하며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14.5% 줄이자고 제안했다. 산업계에서는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5%만 감축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산업 부문 감축 목표치를 확 낮췄다가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총 40% 낮춘다’는 NDC의 기본 골자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탄소중립기본계획안이 ‘산업계 감축 목표치 하향’과 ‘원전 확대 등을 통한 에너지(전환) 목표 감축량 상향’으로 귀결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날 공개된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따르면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목표 감축률은 2021년 NDC 발표 당시인 14.5%(2018년 대비 2030년)에서 11.4%로 조정됐다. 원래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업종별로 목표를 설정했던 것과 달리 산업 부문 ‘전체’에 대해 목표치를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업종별 칸막이를 아예 없앤 것이다.
대신 온실가스를 많이 감축한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권을 더 주는 배출효율기준(BM) 할당을 확대하고 기술혁신펀드를 조성해 산업계 전반에 탄소 감축 ‘인센티브’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한다는 게 탄녹위의 입장이다.
이는 2021년 발표된 NDC에서 감축 목표 대상 업종으로 꼽혔던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업계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산업계의 핵심 NDC 이행 수단으로 꼽힌 바이오나프타 전환이 2030년까지 온전히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게 탄녹위 안팎의 설명이다. 천영길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실장은 “NDC 목표를 이행하려면 바이오나프타 2400만 톤가량이 필요한데 지금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양은 800만 톤 수준으로 알고 있다”고 배경을 언급했다. 여기에 최근 에쓰오일이 9조 원을 들여 울산에 석유화학 생산 설비를 구비하는 ‘샤힌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기존 NDC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대신 정부는 에너지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44.4%에서 45.9%로 올렸다. 석탄 발전을 감축하되 원전 비중을 2021년 27.4%에서 2030년 32.4%로 늘리는 게 골자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도 같은 기간 7.5%에서 21.6%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천 실장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전체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전원 믹스에 NDC 수정안을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를 흡수·제거하는 방법인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부문에 대해서는 국내 탄소저장소 확대를 반영해 흡수 목표를 10.3톤에서 11.2톤으로 높였다. 또 베트남·몽골 등 10여 개국과 함께 국제 감축을 위한 협약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외 부문의 탄소 감축량도 늘려나갈 방침이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NDC 목표치는 40%로 유지했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큰 특징은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완화를 ‘원전 확대’를 통해 상쇄되도록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전제로 NDC를 수립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조적인 대목이다. 이는 이번 NDC 달성의 변수가 ‘원전 계속운전’에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는 여전히 도전적인 과제이지만 기존 NDC안에 업계 의견을 반영한 것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는 긍정적”이라며 “이번 대책은 원전의 계속운전을 전제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안정성이 담보돼야 NDC 달성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전 계속운전과 관련해 행정적 절차 등이 효율화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