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현지 경찰에 검거됐다. 자신은 부정했지만 1년 가까이 지속된 도피생활에 종지부가 찍혔다. 권 대표는 ‘한국판 일론 머스크’, ‘젊은 천재’,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30인’(2019년 포브스), ‘비트코인 고래’ 등으로 불리며 한 때 코인 루나와 스테이블 코인 테라달러(UST)를 만들어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을 주도해가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두 코인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폭락하며 그 여파가 비트코인 등 타 대형 가상자산 급락으로까지 옮겨 붙자 화려한 평가는 180도 뒤집어졌다. 이제 업계에서는 그의 사업 모델이 일종의 사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24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권 대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회사를 두루 거친 청년 창업가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로 불리는 스탠퍼드대학에 입학,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애플과 MS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2015년에는 와이파이 공유서비스 ‘애니파이’를 내놓기도 했다.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를 설립한 건 2018년. 권 대표는 소셜커머스 티몬 창업자 신현성 대표와 함께 자체 개발 코인을 내놓기 시작했다. 테라폼랩스는 루나, UST, 앵커프로토콜이란 3개의 축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앵커프로토콜’은 회사가 만든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금융(디파이) 서비스다.
아무런 법적 신뢰 장치 없이 ‘코인으로 코인을 버는’ 구조는 가상자산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개당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 UST 가격을 ‘스테이블’(안정적?stable)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회사는 자체 코인 루나로 공급량을 조절하는 알고리즘 방식을 채택했다. 아울러 UST를 앵커프로토콜에 예치할 경우 연 19.5%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했다.
달러 등 법정화폐를 예비금으로 활용하는 타 스테이블 코인과 차별화된 데다 이자율이 3~5%대인 타 디파이 플랫폼보다 월등히 높은 이율을 약속하자 투자자들은 속속 테라 생태계에 모여들었다. 초기에는 ‘다단계’, ‘폰지 사기’ 등 비판도 나왔지만 지난해 시장 호황기 속에선 알고리즘이 문제없이 작동하면서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는 명성을 얻었다.
소셜네트워크시스템(SNS) 상에서는 '도권’(Do Kwon)으로 유명하다. 투자자들은 스스로를 ‘루나틱’이라 부르며 루나를 지지하고 권 대표를 따랐다. 지난해 7월 영국의 한 경제학자가 알고리즘에 의한 스테이블 코인 모델이 실패할 수 있다고 지적하자 권 대표는 “난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며 조롱과 함께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 루나는 2021년부터 지난해 4월 초까지 1만 8000배 이상 오르며 전체 가상자산 중 상위 10위권에 안착했고 앵커프로토콜은 이더리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디파이 플랫폼이 됐다. 권 대표는 대형 비트코인 투자자를 뜻하는 ‘비트코인 고래’이기도 하다. 한 때 그가 세운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는 15억 달러 이상의 비트코인을 사들이기도 했다.
지난해 루나·테라 사태가 발생하고 난 이후부터 권 대표는 사태 해결을 자신해왔다. 발생 후 문제가 확산되자 15억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에 나섰다고 밝혔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자신의 주관이 강하고 거침없는 말을 내뱉는 탓에 크립토업계의 ‘악동’으로 불렸던 그는 결국 ‘악마’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는 지난해 4월 말 한국을 출국해 싱가포르에 머물렀고, 두바이와 유럽 등을 옮겨 다니면서 외부와의 소통을 제한했다. SNS를 통해서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거나 미국과 한국 등 관계 당국의 압박에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은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국 검찰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증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하면서 상황이 급변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