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영화

스즈메·슬램덩크·귀칼, 日 애니 뜨는데 한국은 뭐하냐고요? [SE★초점]

'스즈메의 문단속' 230만 돌파,

'더 퍼스트 슬램덩크' 420만 돌파…

'귀멸의 칼날'까지 박스오피스 상위권

日 애니 열풍 속 국내 업계 근황 살펴보니

지난 8일 오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기자회견에 참석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왼쪽)과 주인공 '스즈메'역 배우 하라 나노카. / 사진=연합뉴스지난 8일 오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기자회견에 참석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왼쪽)과 주인공 '스즈메'역 배우 하라 나노카. / 사진=연합뉴스




/ 사진=㈜쇼박스, (주)NEW, (주)디스테이션 제공/ 사진=㈜쇼박스, (주)NEW, (주)디스테이션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열풍이 대단하다. 25일 기준 국내 박스오피스 10위권 내 3편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다. 1위는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으로, 지난 20일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카이 마코토 작품 중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오는 4월 5일 아이맥스(IMAX) 개봉을 앞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벌써 42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영화 ‘너의 이름은’(감독 신카이 마코토)을 꺾고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한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강세 속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의 근황이 문득 궁금해졌다. ‘없는 살림’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봤다.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아동용?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는 어린이만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도 그렇다. 지난달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2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서 '2022년 한국 영화 실질 개봉작 개봉 일람' 자료를 보면 애니메이션 장르로 분류된 작품은 총 15개였는데 이 중 13편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이거나 티브이 어린이용 콘텐츠를 극장판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아동용 콘텐츠가 아닌 작품은 영화 ‘태일이’(감독 홍준표)와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감독 박재범) 단 두 작품뿐이었다.

영화 ‘태일이’,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포스터 / 사진=리틀빅픽처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태일이’,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포스터 / 사진=리틀빅픽처스,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영화는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수익성도 확실한 편이다. 반면 일반 애니메이션 영화는 수익이 보장되지 않아 투자를 받기 어렵다. 이는 곧 열악한 제작 환경으로 이어진다. ‘버티기 힘든 곳’과도 같은 환경에서 창작자가 자유롭게 작품을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전문 인력은 아동용 콘텐츠 시장으로 계속 빠져나가고, 일반 애니 영화의 작품 수 자체가 줄어들며 흥행작 또한 자취를 감추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없는 살림에 지원 감축하기



투자를 받기 힘든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 있어서 국가 지원 사업은 필수이자 큰 자양분이다. 그런데 지난해 5월, 애니메이션 국가 지원금이 대폭 축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서울산업진흥원이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이었다. 서울산업진흥원은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중 50% 이상의 제작 지원을 차지할 만큼 주요한 기관이었기에 더욱 파장이 컸다.

결국 업계 관계자들이 단체 행동에 나섰다. 애니메이션 발전 연대는 “산업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는 감독과 창작의 기회를 막고, 산업 발전의 생명력인 다양성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성과 위주의 보여주기식 지원정책으로의 변질”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거듭된 논의 끝에 다시 사업이 재개되긴 했다. 하지만 그간 3,300만 원씩 10편을 지원하던 것을 2,000만 원씩 3편만 지원하기로 하는 등 그 규모가 크게 축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SBA 서울산업진흥원 규탄 성명서 보도자료’ 캡처‘SBA 서울산업진흥원 규탄 성명서 보도자료’ 캡처


이에 대해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을 연출한 박재범 감독은 “국가 지원 사업 덕분에 산업이 성장해 왔고 한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꾸준히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라고 말하면서도 “문제는 문화 예술 지원 사업은 늘 국가 재정 중에 감축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산업이 크게 휘청거리고 이미 크고 안정된 시스템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꼬집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도전은 계속된다



영화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스틸컷 / 사진=(주)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스틸컷 / 사진=(주)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국내 애니메이터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1월 개봉한 영화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45년 만에 만들어진 한국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제작사 스튜디오 요나 측은 인터뷰를 통해 “제작 인력, 인식, 시간, 예산 등 어느 하나 어렵지 않은 게 없었다”라고 말하면서도 “함께하는 제작진들을 보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가질 수 없었다, 규모가 작은 애니메이션 영화지만 우리에게 그 의미는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스톱모션은 애니메이션 시장 중에서도 작은 시장에 속하기 때문에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한국에선 좀처럼 시도되지 않았던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보여주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와 미 아카데미 공식지정 국제영화제인 제24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연이어 초청되며 관객 반응도 뜨겁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을 넓혀준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영화 ‘아가미’ 포스터 / 사진=연필로 명상하기 제공영화 ‘아가미’ 포스터 / 사진=연필로 명상하기 제공


제2의 디즈니, 지브리가 아닌 한국만의 색채를 담은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제작사도 있다. ‘연필로 명상하기’는 영화 ‘소나기’, ‘무녀도’ 등 한국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해오고 있다. 올해 하반기 개봉 예정인 영화 ‘아가미’는 국내 애니메이션의 투자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효율적인 분업 시스템을 통해 제작 기간을 크게 축소했기 때문이다. ‘연필로 명상하기’ 서해인 PD는 인터뷰를 통해 “이전 작품들은 (한국의 색채를 담겠다는) 가치에 중점을 두었다면, ‘아가미’를 통해서는 이러한 가치를 담아냄과 동시에 상업적인 결과에도 중점을 두어보고 싶다”라는 목표를 밝혔다.

티빙 오리지널 ‘테러맨’ 티저 영상 캡처 / 사진 출처=네이버 TV 네이버웹툰 채널티빙 오리지널 ‘테러맨’ 티저 영상 캡처 / 사진 출처=네이버 TV 네이버웹툰 채널


대기업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네이버웹툰은 자회사인 스튜디오N과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자사 IP의 애니메이션화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을 통해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포맷을 성공적으로 선보였고, 지난 10일에는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됐던 동명의 원작 ‘테러맨’이 티빙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이외에도 웹툰 ‘연의 편지’, ‘나노리스트’ 등의 애니메이션화도 진행 중이다.


■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는 애니메이터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도전과 창작 활동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지원과 지속적인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이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그 원인을 내부적인 부분에서 찾는 의견이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현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한 후에 논의돼야 할 부분일 것이다.





지난해는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의 약진이 특히 돋보였다. 문수진 감독의 ‘각질'이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국제 영화제에 진출했고, 애니메이션계의 칸 영화제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는 ‘각질’과 ‘태일이’가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의 저력을 보여줬다. 꾸준히 성장하며 다채로운 작품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현재, 부정적 인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이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보내줘야 할 때다.


박주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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