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시장의 전체 규모가 지난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겼습니다. 그건 ‘시장’ 얘기고 미술관이나 공공기관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뒷짐 지고 있을 건가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지난해 9월에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서울’을 봅시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미술계 인사들과 컬렉터들이 몰려왔을 때 한국 미술이 이런 것이라는 점을 제대로 보여줘야 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의 아르코미술관이든 국립현대미술관이든 공공미술관이 그 시점에 맞춰 기획 전시를 개최해 판을 벌여야 합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공연·음악·미식 등 문화 전반에 조예가 깊지만, 특히 ‘미술’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사생대회에서 곧잘 상을 받는 편이었고 훗날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을 때는 점심시간을 쪼개 인사동과 삼청동 갤러리들을 자주 다녔다. 그림이 좋아 사고 싶었지만 비싸서 대중의 관심이 더 깊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문턱을 낮추자는 취지로 100만 원 안팎의 소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한 집 한 그림 걸기’ 운동을 갤러리에 제안해 생활 속 미술 향유를 확산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K팝과 K시네마·K클래식 등의 약진 속에 순수미술을 뜻하는 ‘K아트’의 부진이 유독 안타깝다. 정 위원장은 “무용이나 연극은 일회성이라 영화처럼 찍어 동시에 확대할 수 없으니 시장이 협소하지만 미술은 순수예술이면서 시장을 형성한다”며 “미술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도 없어 중국이 자국 현대 미술을 붐업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의 미술과 공공기관의 미술을 분리해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5년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밀라노박람회에 갔다가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시 한국 화랑 국제갤러리가 후원하고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가 기획한 ‘단색화’ 전시가 비엔날레 공식 특별병행전 중 하나로 열리고 있었다. “그 전시를 위해 현지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렸고 개막일 전야제에는 전 세계 주요 예술인 300명을 초청해 만찬을 열었는데 아마도 아르코미술관 1년 예산 22억 원을 넘는 비용이 그 프로젝트 하나에 쓰였을 겁니다. 이후 한국 ‘단색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각국의 미술관·갤러리들이 단색화 전시를 개최하면서 작품을 찾게 됐습니다. 상업 갤러리가 투자를 강행할 때 기관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가 프리즈와의 공동 개최를 국제 무대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듯이 키아프와 프리즈 개최 기간을 우리 미술을 세계에 알릴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 온 해외 미술계 사람들을 위해 미술관과 갤러리를 안내하는 가이드북을 만들려 합니다. 아트페어는 강남에서 열리고 갤러리는 주로 강북에 있으니 셔틀 운영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올해는 미처 못했지만 내년에는 그 시기에 맞춰 꼭 연대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