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 붕괴 이후 370조원 이상의 뭉칫돈이 머니마켓펀드(MMF)로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이 중소은행의 건전성 불안에 예금을 빼내 또 다른 현금성 안전투자처인 MMF로 자금을 옮겨 담고 있기 때문이다.
MMF는 금융기관이 고객의 돈을 받아 단기 투자하는 펀드 상품이다. 원금 손실 위험이 적은 곳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주로 1년 미만 단기 국채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역레포 시장에 투자한다. 기준금리 인상에 MMF의 인기는 높아졌지만, 반대로 은행들의 수익성과 건전성 압박은 그만큼 커지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6일(현지 시간) 데이터 업체 EPFR을 인용해 이달 들어 미국 MMF에 유입된 자금이 2860억달러(371조8000억 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아이머니네트의 자료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의 미국 MMF 상품에는 SVB의 폐쇄 전날인 3월 9일부터 24일까지 520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됐으며 JP모건체이스는 같은 기간 460억달러, 피델리티는 370억 달러의 신규 자금을 유치했다.
이 자금은 주로 미국 중소은행들의 예금에서 나온 돈이다. 연준이 최근 공개한 대차대조표에 따르면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 간 미국 전체 은행의 예금은 984억 달러가 감소했다. 대형 기관의 예금이 670억 달러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중소형 은행에 인출이 집중됐다. JP모건은 최근 2주 동안 지역 은행에서 빠져나간 예금 규모가 5500억 달러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SVB와 시그니처뱅크의 실패 이후 지역 중소 은행에 돈을 맡기는 데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금융 소비자들이 대형은행 계좌 또는 MMF에 돈을 맡겨두는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애셋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애시쉬 샤는 “현재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위험 분산이 잘 돼 있는지, 현재 투자가 나의 성향에 잘 맞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자산을 재분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MF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점도 자금이 몰리는 원인이다. 뱅크레이트닷컴과 크레인 등에 따르면 현재 미국 은행 예금 계좌의 평균 이자율은 0.2%인 반면, MMF의 수익률은 연 4%를 상회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연초 이후 수익률 3.84%보다 높다.
이는 MMF의 주된 투자처인 국채와 연준 역리포의 금리가 오르면서다. 현재 미국 6개월 만기 국채 수익률은 4.81%에 이르며 연준의 역리포시설에서는 현재 은행들에게 4.8%의 이자를 제공한다. 역리포는 연준이 통화정책을 구현하는 창구 중 하나로 연준의 보유 자산을 담보로 시중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성격의 시설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연준이 시중은행에 지급하는 이자율도 오른다. 크레인데이터는 “MMF는 현재 자산의 40%를 연준의 역리포 시설에 넣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지역 중소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예금이 빠져나갈 경우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고, 이에 고객을 붙들기 위해서는 이자율을 올려야 하지만 이는 결국 은행의 건전성 압박을 높이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예금에 많은 이자를 주면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져 수익성이 낮아진다.
이에 은행위기가 경기침체를 앞당기고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은행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신용 경색으로 이어질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이번 SVB사태로 경기 침체가 이전보다 가까워졌다”고 말했다.